나의 가치 찾기

마부위침(磨斧爲針)

by 인문학 이야기꾼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다’는 뜻의 ‘마부위침(磨斧爲針)’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고도 합니다.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죠.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이 어렸을 때 산에 들어가 공부를 했는데 공부에 싫증이 나자 도중에 공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노파를 만납니다. 그 노파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늘을 만들기 위해 도끼를 갈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도끼가 어떻게 바늘이 되느냐고 반문했죠. 노파는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바늘이 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 노파의 노력에 감동하여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학문에 힘쓴 결과 학문의 완성을 이루었다는 것이 이 고사의 유래입니다.


이 고사의 이면(裏面)을 들여다볼까요? 100의 노력으로 1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고, 100의 노력으로 1,000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1의 효과가 예측됨에도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0점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면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율성을 중시한다면 100의 노력으로 1,000의 효과를 얻는 일을 찾아야죠. 바늘을 만드는데 굳이 도끼를 재료로 삼을 필요는 없겠지요. 바늘과 비슷한 크기의 재료를 찾아 바늘을 만드는 것이 훨씬 좋겠죠. 재료가 도끼밖에 없다면 바위에 갈아서 하나의 바늘을 만들 것이 아니라 불에 녹여 수천, 수만 개의 바늘을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봄 직하지요.

그러나 이백(李白)의 눈에 도끼는 무딤으로 바늘은 날카로움으로 비쳤을 겁니다. 자신의 재능이 바늘처럼 날카로워지기 위해서는 도끼를 갈 듯 자신의 재능을 더 갈고 닦아야 된다고 생각했겠지요. 만약 이백이 도끼와 바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100의 가치를 지닌 도끼를 1의 가치를 지닌 바늘로 바꾸고 있는 노파의 모습을 어리석다고 여기지는 않았을까요? 도끼를 갈고 있는 노파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재능을 찾고 도끼와 같이 무딘 재능을 바늘처럼 날카롭게 벼리는 이백의 자세를 칭찬하고 본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도 있습니다. 마부위침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속뜻이죠. 아흔 살 된 우공이라는 노인의 집 앞에 만 길 높이의 산이 있어서 생활하는 데 무척 불편했습니다. 노인은 가족들에게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산을 옮겼으면 한다. 그러면 다니기에 편할 것이다’고 말했죠.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산을 옮기는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우공의 아들과 손자가 합세했습니다. 이웃 사람이 ‘너무 무모한 짓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우공은 ‘자자손손 하다 보면 언젠가 산이 옮겨지고 길이 날 것’이라고 했죠. 이것이 이 고사성어의 유래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학생들에게 평가하게 해 보았습니다.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는 우공의 어리석음’으로 해석한 학생이 많았습니다. ‘산을 옮기지 말고 이사를 하라.’, ‘흙은 옮길 수 있어도 바위와 나무는 옮길 수 없다.’, ‘생태계 파괴’, ‘산사태 우려’ 등 부정적 평가는 나왔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전적 속뜻으로 평가한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공은 ‘산을 옮긴다’는 말 하나로 자기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산을 옮긴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 하나로 지난 이천 년 동안 자신의 가치를 뽐내었습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자기만의 생각,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가치를 찾는 일의 중요성을 ‘우공이산’의 의미에 추가해도 될 듯싶습니다.

요즘 TV에 트로트 열풍이 거셉니다. 특히 초등학생을 포함한 학생들이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의 영어와 수학 공부는 어떤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이 중요하다고 음악에 쏟아야 할 열정을 영어와 수학으로 옮기게 한다면 과연 자기만의 바늘을 만들고 자기만의 산을 옮길 수 있겠는지요?

음악에 될성부른 싹이 보인다면 날카로운 음악의 바늘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음악에 대한 싹이 도끼와 같이 무디다면 이것으로 음악의 바늘을 만들 것이 아니라 우람한 나무를 자르는 일을 하거나 바늘이 할 수 없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겠지요. 학생들은 바늘 되기가 싫은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부모님들이 도끼를 바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바늘보다 튼튼하고 멋진 금도끼가 탄생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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