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수도 있지만 도끼에 색깔을 입혀 금도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도끼가 지닌 기존의 가치와 다른, 새로운 가치의 금도끼를 만든 사례를 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도끼를 장정일 시인은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금도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실 뒤에 앉은 덩치 큰 녀석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연애편지를 써야 되는데 잘 안 되니까 저보고 써 달라고 하는 겁니다. ‘연애편지는 본인이 써야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위 시를 조금 각색해서 연애편지인 양 써 준 적이 있었습니다. 덩치 큰 녀석이 뒤에 아무 말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덩치도 덩치의 여자친구도 그 연애편지가 김춘수 시인의 시였다는 것을 몰랐나 봅니다.
이 시는 존재의 참된 모습을 인식해가는 과정을 통해 존재들 사이에 진정하고 의미있는 관계가 형성되기를 소망한 작품이죠.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때문에 연애시로 읽히기도 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는 것도 편견일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시를 패러디하여 장정일 시인은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장정일,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시인은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새롭게 창조하고 있습니다. 라디오의 버튼을 누르기 전의 라디오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플라스틱 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혈액이 순환하듯 뉴스가 나오고 음악이 나옵니다. 황량함이 활력이 되었습니다. 플라스틱 통의 버튼을 눌러 혈액을 돌게 하고 소리가 나게 하듯이 화자의 황량한 가슴에 버튼을 눌러 달라고 합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라디오처럼 사랑이 넘칩니다. 여기에서 반전이 나타나고 이것이 이 시의 묘미죠.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 라디오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듣고, 듣고 싶지 않을 때 듣지 않겠다는 것처럼,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지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랑, 필요할 때만 사랑을 하고 싶다는 현대인들의, 가볍고 일회적인 인간관계를 풍자하고 있죠.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고사성어의 속뜻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시를 흉내 내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생각 바꾸기의 힘이죠.
저는 담배를 15년 동안 피우다가 끊었습니다. 끊는다고 작심하고 끊은 것이 아니라 하루만 안 피우기로 생각했습니다. 담배를 완전히 끊기는 어려워도 하루 안 피우는 것은 쉽다고 생각했죠. 생각을 살짝 바꾼 겁니다. 하룻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가 어제 결핍된 니코틴을 충전이라도 하듯 담배 연기를 폐 깊숙이 집어넣었습니다.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 지면서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하늘도 핑 도는 듯했습니다. 담배의 독성을 임상실험한 셈이죠. 그길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지금도 이해인 시인의 ‘어떤 결심’이라는 시를 읽으면 ‘담배를 완전히 끊지는 말고 하루만 피우지 말자’는 생각 바꾸기가 결국 금연으로 이어진 저의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 ‘어떤 결심’
남에게 베풀어 준 것은 생생한데 그 고마움을 몰라주는 남들이 섭섭하고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한다면, 내 삶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러한 섭섭함이 생각날까요? 아마 더 베풀어주고 더 남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화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겁니다. 사랑과 감사의 기도가 너무 피상적이지 않게, 말만으로의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베풀기를 다짐합니다.
남들보다 순수하고 고결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절대자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 반성이 됩니다. 절대자를 본받기 위해 절대자의 삶을 잣대로 자신을 들여다보니 허점이 많습니다. 매일매일 수많은 날을 절대자의 삶처럼 순수하고 고결하게 살아가려고 생각하나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만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살자’고 생각을 조금 바꾸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행복이 웃으며 걸어오’는 듯합니다. 생각 바꾸기의 힘이 고결한 시인의 마음마저도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