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노후 생활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 곳간도 걱정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지금 조금이라도 아껴서 자꾸 적금을 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아내에게 ‘금(金) 중에 가장 귀한 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제 뜻을 알아차리고 ‘지금(只今)’이라고 답은 합니다. 정말로 지금이 가장 귀한 금이겠는지요? 지금이 황금보다 소중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금보다 황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생각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그 다름이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니까요.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부실하게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 잘 먹어야 그 힘으로 생일날 더 잘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비가 온 뒤에 산길을 걷다보면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움푹 파인 자리에 물이 고여 있는 길을 만납니다. ‘이 물이 언제쯤 마를까?’를 생각하는데 문득 철부지급(轍鮒之急)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릅니다. 발자국 자리에 고여 있는 물은 금방 마르겠지만 장자(莊子)가 발견한 ‘지금’의 가치는 이천삼백 년을 지나도 마르지 않습니다.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가 양식이 떨어져 관직에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내가 며칠 후에 큰돈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그때 도와줌세”라고요. 그러자 장자는 “내가 여기 오는 길에 누가 부르기에 돌아봤네.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에 붕어 한 마리가 한 바가지 물로 자기를 살려달라고 했네. 그래서 내가 왕께 건의해서 강물을 끌어다가 살려 주겠다고 했다네.” 하고 친구의 집을 그냥 나갔다는 겁니다. ‘철부지급(轍鮒之急)’의 고사이지요. 철부지급은 ‘수레바퀴 자국 속에 있는 붕어의 위급’을 뜻하죠.
그렇습니다. 붕어에게는 지금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한데, 붕어가 죽은 후에 강물을 만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한 바가지의 물이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요. 임시방편일지라도 위기를 넘겨야 되지 않을까요? 며칠 후의 강물이 붕어에게 근본적인 방법이고 황금일지라도 지금은 물 한 바가지가 더 소중하지요. 그래서 황금보다 지금이 더 귀한 것입니다. 내일 잘 먹기 위해서 지금 굶어야 할까요? 행복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행복해야 그 행복의 힘으로 내일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몇 년 전에 학생들과 함께 경남 의령에 ‘대봉감 수확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1박 2일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올 때, 마을 이장님께서 홍시가 되면 먹으라고 대봉감 열 두어 개를 주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두고 홍시가 되기를 기다립니다. 급한 마음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도 봅니다. 열흘이 지나도 처음처럼 단단합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하니 조금씩 물러집니다. 가장 무른 것을 골라 시식을 합니다. 떫은맛이 입안에 가득합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감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이놈이 서운했던지 홍시가 되었습니다. 좀 일찍 홍시가 되는 놈도 있고 좀 늦게 홍시가 되는 놈도 있어서 며칠 동안 홍시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홍시가 되는 속도는 감마다 다릅니다. 하루에 한 개씩 홍시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지요. 어떤 감부터 먹는 것이 좋을까요? 어떤 사람은 매일 제일 잘 익은 홍시부터 먹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제일 잘 익은 홍시는 내일 먹기 위해 아껴둘 수 있겠지요. 제일 잘 익은 홍시부터 먹는 사람은 매일 제일 잘 익은 홍시만 먹게 되고, 제일 잘 익은 홍시를 내일 먹기로 한 사람은 매일 덜 익은 홍시만을 먹게 되겠지요.
물론 미래에 대한 투자도 필요합니다. 오늘 홍시만 소중하고 내일 홍시는 소중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냐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싶다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면서 미래에 투자하지 말고 현재의 행복을 조금 덜어서 미래의 행복에게 나누어 주는 정도면 어떨까 싶습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옛날 중국 송나라에 원숭이를 무척 좋아하는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있었지요. 원숭이가 늘어나자 먹이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원숭이에게 도토리 8개씩을 주었나 봅니다. 7개로 줄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는 3개씩, 저녁에는 4개씩 주겠다’고 했지요. 원숭이들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아침이었나 봐요. 매일 아침 4개씩 먹던 도토리를 3개밖에 못 먹게 생겼으니 원숭이의 불만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자 저공은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씩 주겠다’고 했죠. 그러자 원숭이들이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사전적 가르침의 측면에서 보면 원숭이는 눈앞의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선택해야 현명한 선택일까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미래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 원숭이의 선택이 현명하죠. 지금 배불리 먹어야 열심히 놀 수도 있고 열심히 일도 할 수 있죠. 지금 배고프면 저녁까지 버틸 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전에서는 저공 역시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7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배분해 준 것이 간사한 꾀로 상대를 속이는 것일까요? 속임수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한 현명한 판단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저공이 원숭이들의 생각과 달리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고집했다면 하루종일 원숭이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공과 원숭이 모두 확실한 ‘지금’을 불확실한 ‘미래’보다 소중한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저공과 원숭이가 ‘철부지급’의 고사를 알고 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