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돌층계의 어디쯤인데

현재의 소중함

by 인문학 이야기꾼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습니다. 집에 달려와 엄마에게 자랑했지요. “엄마, 나 100점 먹었어요.” 엄마가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 100점은 중요하지 않아. 중학교 가서 100점을 맞아야지.” 아이는 시큰둥하죠. 중학교에 가서 또 100점을 맞아 엄마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중학교 100점은 중요하지 않아. 고등학교 가서 100점을 맞아야지.” 아이는 고등학교에 가서 100점을 맞아 또 엄마에게 자랑했어요. 그러자 엄마는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100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내일만 바라보면 현재의 행복은 없습니다. 지금 100점을 맞아도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내일 100점을 맞기 위한 짐일 뿐이죠. 이렇게 오늘을 희생하면 평생 오늘은 희생의 대상일 뿐입니다. 김남조 시인의 ‘설일(雪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지금’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겠습니다.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김남조, ‘설일(雪日)’


제목이 ‘설날’도 아니고 ‘눈 오는 날’도 아니고 ‘설일(雪日)’입니다. 아마 설날 아침 눈이 왔던 모양입니다. 그 눈을 보면서 ‘새해에는 이런 자세로 살아야지’라고 다짐을 한 듯합니다. 특히 3연에 ‘삶은 언제나 은총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삶은 돌층계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돌층계의 중간 어디쯤에 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돌층계를 오르는 것은 힘들죠. 끝이 보이면 힘들어도 조금만 조금만 힘을 내면 되겠지만, 김남조 시인의 인식으로는 삶은 항상 돌층계의 어디쯤입니다. 시인은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과정이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기면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자갈밭’이라고 했죠. 남을 사랑하는 것이 힘들지만 섭리로 여기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겁니다. 돌층계의 끝이 보이고, 자갈밭의 끝이 보인다면 그 끝을 목표로 현재를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항상 과정이고 진행 중입니다. 그러니 돌층계를 오르고 자갈밭을 건너는 ‘지금’, 지금에 맞는 행복을 찾아야 되겠지요.


다시 시험 100점을 맞은 아이에게로 돌아갑니다. 엄마의 시각으로 보면 아이의 오늘보다 아이의 내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도토리 3개보다 내일의 도토리 4개가 더 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돌층계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대학도 돌층계의 어디쯤일 뿐이죠. 취업, 결혼, 육아, 승진 등 삶의 전체가 돌층계의 어디쯤이 되는 셈입니다. 오늘 100점은 그것대로 행복해하고 칭찬해주고 그러면 그것이 미래의 자양분이 되어 미래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도토리 4개를 먹고 에너지를 충전해야 내일 행복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 굶고 희생하고 투자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최인철 교수의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스페인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90세가 넘었는데도 하루 3시간 이상 첼로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이웃집 사람이 묻습니다. “왜 그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하세요?” 카잘스는 “요즈음 실력이 조금 느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합니다.

90세의 카잘스가 연주회 준비를 위해 연습을 했겠습니까? 누구에게 과시하기 위해 연습을 했겠습니까? 연습 자체에 재미를 느끼고 연습하면서 실력이 향상되는 것에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카잘스는 미래를 위해 연습은 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위해 연습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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