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남의 말을 수용하는 기준

by 인문학 이야기꾼

남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면 엉뚱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솝 우화 ‘아버지와 아들과 당나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러 갑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와 함께 나란히 걸어갑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 사람들은 당나귀를 안 타고 가네. 쓸모없는 당나귀잖아. 하하!”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웁니다. 이번에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죠. 할머니는 “아버지는 걷고 아들은 타고 가는군. 아들이 불효자야.”라고 하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게 하고 자신이 당나귀에 탑니다. 한참 가다가 젊은 엄마를 만납니다. “어린 아들을 걷게 하다니 나쁜 아버지로군.” 젊은 엄마의 말을 듣고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당나귀를 타고 갑니다. 어떤 신사를 만나 “불쌍한 당나귀로군. 두 사람을 태우니 당나귀가 힘이 하나도 없잖아!”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의 다리를 묶어 어깨에 둘러매고 갑니다. 그들이 다리를 건널 때 사람들이 크게 웃습니다. 웃음 소리에 놀란 당나귀가 발버둥을 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의 말을 수용하려고 하면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를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몫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시비(是非)과 이해(利害)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행동을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과 손해의 관점에서 접근해 봅니다. 자신에게 미치는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얼마나 손해를 끼치는가를 판단의 준거로 삼으면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타지 않고 가는 것이 남들에게 손해를 끼치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아버지는 당나귀를 타지 않는다고 자기를 비웃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겁니다. 당나귀에 아들이 타든 아버지가 타든 아무도 타지 않든 그것이 길 가는 사람들에게 손익(損益)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길 가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수용할 의무도 없고 수용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귀가 얇아 남의 이야기를 잘 수용하는 편입니다. 저는 저의 판단보다 남의 판단을 더 믿기 때문에 회의를 할 때도 의견을 잘 내지 않습니다. 회의가 끝났을 때의 결론은 제가 생각한 결론보다 좋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런 저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不在其位, 不謀其政(부재기위 불모기정)]’라고 한 『논어(論語)』의 말씀을 끌어옵니다. 저의 처지를 알고 공자님은 2,500년 전에 좋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귀가 얇아 낭패를 본 경우가 또 있습니다. 한비자는 『한비자(韓非子)』에서 군주의 권력을 위협하는 나쁜 신하의 여덟 가지 술수를 팔간(八姦)이라고 하면서, 그 첫 번째로 ‘동상(同床)’을 들었습니다. 동상이란 군주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왕후와 후궁들이 군주를 현혹시키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는 것을 말합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楚懷王)에게 정수(鄭袖)라는 애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웃 나라에서 정수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을 회왕에게 보냅니다. 왕의 사랑을 빼앗긴 정수는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채 신첩에게 뇌물을 주기도 하고 이부자리를 봐주기도 하며 공을 들입니다. 그러면서 신첩을 물리칠 꾀를 생각해 내지요. 신첩이 정수에게 어떻게 하면 왕의 사랑을 받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정수는 신첩에게 ‘왕은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좋아한다’며 거짓 정보를 줍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은 왕을 마주할 때마다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그 이유를 정수에게 물었습니다. 정수는 신첩이 대왕의 입냄새가 싫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화가 잔뜩 난 왕은 그 여인의 코를 잘라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 여인이 변명할 사이도 없이 시종이 달려와 코를 벱니다. 정수가 시종에게 왕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시행하라고 지시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 여인은 이유도 모른 채 코를 베이고 궁궐에서 내쫓겼습니다. 귀가 얇아 음모에 당한 전형입니다.


왕은 같은 잠자리에 있는 정수와 같은 인물의 음모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생각입니다. 귀가 얇아 정수의 계책을 수용했다가 코를 베이게 된 여인도 안타깝지만, 정수의 이야기에 여인의 코를 벤 군주의 결정도 안타깝습니다.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듣는 사람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강한 올가미를 만들어 씌우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올가미인지 좋은 정보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입니다. 공자(孔子)는 ‘많은 사람이 싫어해도 반드시 좋은 점이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도 반드시 나쁜 점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중오지필찰언, 중호지필찰언)]’고 했습니다. 시비(是非)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권력자일수록 이 말을 수용해야 합니다. 코를 베고 난 뒤, 음모를 알아도 그 코를 다시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귀가 얇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결정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을 따져본 뒤에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최종 결정권자가 어떤 판단을 할 때는 이해(利害) 관계를 잘 살피라는 것이 한비자(韓非子)의 생각입니다. 『한비자(韓非子)-내저설하(內儲說下)』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춘추시대 진문공(晉文公)때의 이야기입니다. 궁중 요리사가 고기를 구워 올렸는데, 고기 몸통에 머리카락이 여럿 감겨있었습니다. 요리사가 끌려왔습니다. 화가 난 진문공은 “과인이 목이 막혀 죽는 꼴 보고 싶은 것이냐, 어찌하여 머리카락을 감았느냐”고 묻습니다. 요리사는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신은 세 가지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저는 칼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는 잘랐어도 머리카락은 자르지 못했고, 고기를 꿰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를 꿰면서도 머리카락은 꿰지 못했으며, 고기를 굽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기는 구웠지만 머리카락은 태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죽을 죄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요리 기술이 이렇게 뛰어난데 어떻게 머리카락이 감겨있을 수 있겠냐는 겁니다. 즉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을 항변한 말이죠. 요리사는 자기를 시기하는 자가 꾸민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문공도 이상하게 생각하여 조사했고, 요리사의 조수가 저지른 범행임을 밝혀냈습니다. 주방을 차지하고 싶었던 욕심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자백을 받은 것이지요.

진문공의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고기를 구웠는데도 머리카락이 남은 것은 요리 후에 누군가 머리카락을 감아놓은 것이라는 요리사의 논리적인 말을 수용한 것도 주효했지만, 특히 요리사가 처벌을 받을 때 누가 가장 많은 이익을 얻을지를 살핀 것이 정확한 판단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한비자는 “나라에 해로움이 생기면 그 이익을 가져간 자를 살피고, 신하에 해로움이 생기면 그 반대에 있는 자를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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