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터에서 생긴 일

고향 마을은 하늘만 남았는데

by 인문학 이야기꾼

낚시터에서 생긴 일

낚시터에서 생긴 일

-함민복


댐에 도착한 변경철씨는 작은 목선을 하나 빌렸다

달빛 출렁이는 수면을 가르며 노를 젓는 변경철씨

곁에는 등산복 차림의 누이가 낚시 가방을 껴안고 있고

어머니는 흔들리는 달 그림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배를 멈추어라 여기쯤 될 것 같다 어머니가

닻을 내리자 배는 스르르 멈추었다 누이가 삼키고 있던

울음이 수면에 잔잔하게 깔리고 어머니가 누이를 보듬었다

변경철씨는 낚시 가방에서 각진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흰 장갑을 끼며 누이에게도 장갑을 끼워주었다

잠시 후 달빛을 받으며 변경철씨 매형의 뼛가루는

싱싱한 물비린내 가득한 강물 위에 흩어졌다


관리인에게 들키면 큰일난다고, 서울 낚시꾼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수몰민인 매형의 유언에 따라, 고향 마을 깊은 하늘 위에


이 시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시(詩)이지만 소설처럼 등장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고 배경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따라 가보겠습니다. 배경은 댐입니다. 어느 마을이 수몰된, 지금은 달빛 흔들리는 물 위입니다. 등장인물은 변경철씨(화자)와 화자의 누이, 화자의 어머니 세 사람입니다.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서울 낚시꾼과 관리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골이 된 매형이 있습니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변경철씨는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누이를 좋아하는 총각도 살았지요. 그 총각은 누이와 결혼합니다. 행복한 신혼 생활이 끝나기도 전에 그 마을은 댐 건설로 인해 수몰지구로 선포됩니다. 누이와 매형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납니다. 변경철씨와 어머니도 고향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오랜 세월 타지로 떠돌다 매형은 고향 산천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불귀의 혼이 됩니다.

매형의 고향 산천은 물에 잠겼기에 매형의 유언을 온전히 받들 수 없습니다. 절반만이라도 받들기 위해 고향 마을을 삼킨 물 위까지 목선을 타고 갑니다. 고향 마을에서 바라보던 하늘이라도 실컷 보라고 물 위에 매형의 뼛가루를 뿌립니다. 매형의 뼛가루와 함께 누이의 눈물이 수면 위에 뿌려집니다. 달빛도 수면 위에서 일렁입니다. 고향을 집어삼킨 강물은 싱싱한 물비린내를 풍기며 매형의 유골과 누이의 눈물마저 집어삼킵니다.

매형의 뼛가루를 뿌린 사실이 알려지면 서울 낚시꾼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낚시꾼을 매개로 살아가는 댐 주변의 매운탕집들의 생계가 막막해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수몰민의 유해가 심심찮게 강물 위에 뿌려지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관리인은 그것을 막기 위한 임무도 부여받은 듯싶습니다.


댐 건설은 근대화의 상징입니다. 댐 건설로 전기가 생산되고 그 전기를 가정에서도 공장에서도 사용합니다. 전기로 인해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보장됩니다. 눈에 보이는 발전의 근원은 댐 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댐 건설이 누구에게는 풍요로움을 주지만, 누구에게는 아픔을 줍니다. 수몰민들은 아늑하고 단란한 고향 마을에서 내몰려 평생을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며, 평생 동안 고향 마을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살아생전에 고향에 갈 수 없기에 죽어서 유골만이라도 고향 산천에 묻히고자 했지만 이제 고향 마을은 하늘만 남았기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넋은 ‘고향 마을 깊은 하늘 위에’ 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詩)가 있기에, 달빛에 일렁거리는 강물을 통해 근대화의 이면에 있는 수몰민의 아픔을 느낍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 이미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흥왕리 방앗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