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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31. 2021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

불인지심(不忍之心)

  『맹자(孟子)-공손추상(公孫丑上)』에서 맹자는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잔인하게 굴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인개유불인인지심)]”고 했습니다. 차주환 교수는 ‘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을 ‘남을 괴롭게 하거나 남이 불행 속에 들어가는 것을 차마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지 못하는 마음’으로 풀었습니다. ‘참을 인(忍)’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견딤’으로 푼 것이죠. 네 글자 맞추기를 좋아하는 한문 특성상 이를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불인지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불인지심을 기준으로 강태공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3,000여년 전에 살았던 강태공의 이야기는 『사기(史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으며, 여러 버전으로 전해집니다.  

   

  은나라(상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폭군이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강태공(강상)’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예지력이 있었나 봅니다. 머지않아 은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알죠. 그래서 때를 기다립니다. 곧은 낚시 바늘을 물에 드리우고 세월을 낚은 거죠. 그래서 오늘날 강태공은 낚시꾼을 의미합니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합니다. 주나라 건국의 일등 공신으로 제나라 첫 번째 왕이 되어 화려하게 돌아옵니다. 강태공의 나이 80세 때의 일입니다.

  강태공이 젊은 시절 공부만 할 때, 생계는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은 공부하고 아내는 뒷바라지합니다. 수십 년을 그렇게 했죠. 하루는 아내가 들일을 나가면서 남편에게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둔 곡식을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왔습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죄다 떠내려가고 없습니다. 화가 난 아내가 남편에게 ‘곡식을 왜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비가 오는 것을 몰랐다’고 대답합니다. 수십 년 쌓이고 쌓인 불만과 울분이 이혼의 원인이 됩니다. 그날로 이혼을 합니다. 나이 80인데 말이죠. 강태공을 일컬어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의 사나이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80세를 살고, 80세부터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조강지처와의 이혼까지가 ‘궁팔십’의 삶이었습니다.     


  강태공은 왕이 되어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여기서부터 ‘달팔십’의 삶이 펼쳐집니다. 화려하게 복귀하는 강태공의 행렬을 거지가 된, 꼬부랑 할머니가 봅니다. 자기 남편이 왕이 되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는 지난날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재결합하자고 하죠. 왕이 된 강태공은 물 한 바가지 떠오라고 합니다. 바닥에 쏟아붓습니다. 다시 담아 보라고 합니다. 담을 수가 없죠. 강태공이 꼬부랑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그렇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소. 한번 떠난 사람과는 다시 합칠 수 없소’라고 말이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뜻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말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강태공은 지략가로, 제나라 시조로 수천 년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강태공의 행위는 옳은 행위일까요? 아내의 행위는 그른 행위일까요? 자기를 위해 수십 년 헌신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왕이 된 후 억지로라도 찾아야 함이 마땅하거늘, 찾아온 아내에게 ‘엎질러진 물’ 운운하며 내치는 행위는 왕이 아니라 범부(凡夫)로서도 차마 하지 못할 행위입니다.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아 수신제가(修身齊家)가 덜 된 사람, 불인지심(不忍之心)이 부족한 사람이 치국(治國)은 잘했나 봅니다. 다산(茶山)의 논리로는 비이리(非而利)를 실천한 인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선(善)과 불선(不善)에 따라 하늘이 복을 주고 화를 준다는 것은 강요된 관념적 지식이지 실천적 증명의 대상은 아닌 듯합니다. 복과 화를 주관하는 하늘의 문제는 수천 년 동양 사상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사기(史記)』라는 책으로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풍성하게 하고 생각할 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해 준 ‘사마천(司馬遷)’은 하늘의 도[天道]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불인지심(不忍之心)이 과연 천도(天道)인지 사마천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무제(漢武帝) 때 태사령(太史令)이 됩니다. 지금부터 2,100년 전의 일이지요. 태사령은 천문, 역법, 역사 등을 관장하는 직책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쯤 되나 모르겠습니다. 한무제는 북방 흉노족을 토벌하기 위해 ‘이광리’라는 장수와 ‘이릉’이라는 장수를 보냅니다. 자신의 처남인 ‘이광리’도 패배하고 ‘이릉’도 패배합니다. ‘이릉’은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서도 눈부시게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항복하고 맙니다. 조정 대신들이 이릉의 가족마저 처벌할 것을 주청하는 가운데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이것이 한무제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겁니다. 처남인 이광리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듯한 오해를 샀기 때문이죠. 

  사마천에게 역적을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고대 중국의 형벌에는 먹으로 죄명을 얼굴에 새기는 묵형(墨刑), 코를 베어내는 의형(劓刑),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월형(刖刑), 남자의 생식기를 잘라내는 궁형(宮刑), 목숨을 끊는 사형(死刑)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는 50만 전의 돈을 내거나 궁형을 당하는 길이 있었습니다. 50만 전은 오늘날 수백 억에 해당하는 큰돈으로 사마천에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역사서를 편찬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서 죽기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치욕과 울분의 에너지를 저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오늘날 불멸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집필합니다. 그러나 사마천도 인간인지라 ‘백이숙제’와 ‘도척’의 삶을 끌어와 자신의 억울하고 치욕적인 삶을 토로합니다.   

   

“백이숙제는 충신이었지만 굶어죽었고, 도척(盜跖)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잔인한 짓을 했지만 천수(天壽) 누렸다. 하늘의 도란 옳은가? 그른가?[天道是耶非耶(천도시야비야)]”     


  하늘의 도[天道]가 있다면 충신이 굶어죽고 도적이 천수를 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천도(天道)가 있다면, 한무제(漢武帝)가 불인지심(不忍之心)을 가진 군주였다면 바른말을 한 자신이 치욕스러운 궁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신성시되던 하늘을 향해 ‘하늘의 도는 옳지 않다’고 자신의 울분을 토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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