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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Jan 07. 2022

금호동의 봄을 기다리며

함민복, '폐가'

            폐가

                        -함민복     


    세월은 문짝을 싫어하는 게지

    문짝을 먼저 떼어갔네

    세월은 문짝을 좋아하는 게지     


    세월의 문짝

    저 집에 살던 사람들

    지고 피던 꽃     


    서럽다고

    혼자

    핀 복사꽃     


    이마로 지붕을 짚고

    손으로 지붕처럼

    기운 세월을 짚고     


  화자는 빈집을 보고 있습니다. 주인이 오래전에 떠나 폐가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어디로, 왜 떠났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서울로 떠난 것 같습니다. ‘유덕 아범’의 유덕 아범처럼, ‘낚시터에서 생긴 일’의 변경철씨처럼, ‘흥왕리 방앗간’의 설희씨네 가족처럼 산업화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것 같습니다. 

  세월은 이 집의 주인만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이 집의 문짝도 싫어했나 봅니다. 문짝이 너덜너덜합니다.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면 문짝만은 온전해야 하는데 폐가의 이미지는 떨어진 문짝이 대변합니다. 아니 어쩌면 세월은 이 집의 주인을 좋아해서 주인을 서울로 데려갔는지도 모릅니다. 세월이 문짝을 좋아해서 문짝부터 데리고 가듯이 말이죠.     

  세월이 데리고 간 문짝, 세월이 데리고 간 이 집의 주인. 이 집의 주인도 서울 어느 하늘 아래에서 나동그라져 있는 이 집의 문짝처럼 내팽개쳐져 있지나 않은지 모릅니다. 그런 주인을 애석해하기라도 하듯이 복사꽃이 서럽게 피었습니다. 복사꽃 혼자 서럽게 피었습니다. 자기만 남겨두고 주인도 떠나고 문짝도 떠났습니다. 복숭아나무는 혼자 남아 세월의 힘에 이끌려 힘겹게 꽃을 피웁니다. 

  복숭아나무는 혼자도 버티기 어렵지만 다 쓰러져가는 지붕을 이마로 떠받치고 있습니다. 서울로 떠난 주인의 삶을 떠받치고 싶은 마음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주인이 떠나고 난 세월의 이곳저곳이 기워진 것처럼 지붕도 기운 자리가 듬성듬성합니다. 그런 지붕을 떠받치며 복숭아나무는 힘겹게 꽃을 피웠습니다. 서울로 떠난 주인도 세월을 힘겹게 기우며 혼신의 힘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노루새끼가 살았을 금호동 산에 똬리를 틀고, 온몸으로 금호동의 봄을 기다립니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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