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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15. 2021

기호 108번

기호 108번의 당선을 위하여

            기호 108번

                                -함민복     


    국민들을 위한다면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팔았으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 일을 하셨어도

    진정 국민들을 위하였다면

    자신이 부족하였음을 느끼셨을 텐데

    부족하여 

    미안하여

    재산을 다 헌납하시거나

    아무도 모르게 선행으로 다 쓰셨어야 옳았을 텐데

    재산이 늘었다니요! 

    잘못 전달된 거겠지요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 재산을 늘린 분들이 계신다면

    대통령님이시거나, 국회의원님이시거나, 검사님이시거나,

    도지사님이시거나, 시의원님이시거나, 농협장님이시거나, 

    다 개새끼님들 아니십니까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을 파신, 파실 분은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

    성불하시지 않겠다는

    기호 108번

    지장보살님 꼭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적 상황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시적 화자는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을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도 국회의원님도 도지사님도 검사님도 농협장님도 재산이 증가했습니다. 성실성과 알뜰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재산이 증가했습니다. 저축이 미덕이라 배웠던 바를 실천해서 재산이 증가한 것이 아닙니다. 모르긴 해도 그들만의 권력이나 그들에게만 공개된 정보를 이용해 재산이 증가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순간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선거 유세 장면이 떠오릅니다. 확, 열이 오릅니다. 

  입후보자들은 누구나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목이 터져가 외칩니다. 당선되어 4~5년 동안 국민을 위해 일했다면 자기의 재산은 거덜이 나고 국민의 삶은 좋아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국민의 삶은 뒷걸음질만 하고 권력자들의 재산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재산 증가 정도가 권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시인에 의해 권력자들은 ‘개새끼님들’로 치환됩니다. 시인은 선거 때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한 님들을 ‘개새끼님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오늘 떠오른 해는 내일 다시 떠오릅니다. 올해 봄은 내년에 다시 돌아옵니다. 자연계의 질서는 하루 단위로 혹은 일년 단위로 리셋됩니다. 매주 월요일을 만들고 매달 1일을 만들고 매년 설날도 만들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 시작을 다짐하고 주말의 재충전을 통해 일주일을 다시 시작합니다. 매월 봉급을 받을 때 일에 대한 감사함을 가질 수도 있고,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 해 새로운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選擧)는 인위적 리셋인 셈이죠. 지난 4년을, 5년을 돌아보아 우리 손으로 뽑은 지도자들의 공과(功過)를 판단하여 다음 4~5년을 리셋하여 4~5년을 통째로 그들에게 맡기게 되죠. 

  선출직 공무원들은 그나마 리셋 장치라도 있으니 리셋 버튼으로 그들을 응징할 수 있죠. 그러나 ‘검사님’들은 리셋 장치가 없습니다.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들만의 권력으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리셋 장치가 없으니 가속도가 붙어 스스로는 제어하기도 어렵습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그들만의 권위와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명찰은 달고 다니지만 국민의 종이 아니라 국민을 종으로 대하기 일쑤입니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구축하고 수시로 변하는 잣대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도 리셋 버튼이 없으니 어느 선출직 권력자보다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대표자를 선출할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될까요? 이 시는 그에 대한 답을 줍니다. 재산이 얼마나 증가했나를 보라는 겁니다. 그들의 권력을 이용해 재산이 증가했다면 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리셋 버튼을 누를 때 잘 살피고 눌러야 된다고 시인은 묵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지옥으로 갑니다. 지옥의 참상을 보고 자신의 전 재산을 지옥의 중생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자신의 옷마저 나누어주어 입을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 전부를 구원하기 전까지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마음 정도는 되어야 ‘국민을 위해 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호 108번이 출마한다면 당연히 그를 찍겠지만 기호 108번은 출마하지 않습니다. 중생의 108 번뇌를 다 해결하고 난 뒤에야 출마를 고려하겠지요. 출마자들에게 중생의 108 번뇌 모두를 해결해 주겠다는 지장보살의 마음까지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108 가지 번뇌 중에서 하나의 번뇌만이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지도자님이 출마하면 기쁜 마음으로 그를 선택하겠다는 것이 시인의 마음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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