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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10. 2021

대운하 망상

대운하는 망상인가 정상인가

         대운하 망상

                          -함민복     


    물이 법(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

    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     


    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

    물을 가둬 실용하려는 것은 사뭇 다르네     


    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

    괴물 강산 만든다 하니     


    물소리 어찌 들을 건가

    새봄의 피 흐려지겠네          


  대운하(大運河)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杭州]에 이르는 길이 1,515km의 물길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운하(運河)는 선박의 교통을 위해 인공적으로 육지를 파서 만든 수로(水路)를 말하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선 후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의 득과 실은 과학적으로, 학문적으로 검토할 부분이고 여기에서는 시에 나타난 시인의 생각을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물이 법(法)이었’다고 한 점은 시적인 표현이지만 학문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한자 法은 ‘氵(水)+去’로 되어 있습니다. ‘氵’는 ‘물’을 의미하고, ‘去’는 ‘가다’를 의미합니다. ‘法’은 물[水]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去] 것이 당연한 이치이니 물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삶의 이치라는 뜻이죠. 물은 아래가 가득 차야 위로 올라갑니다. 위에 힘 있는 사람이 있고 돈 있는 사람이 있어도 물은 아래를 먼저 채웁니다. 힘 있는 사람을 먼저 이롭게 하기 위해 거슬러 흐르지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갑니다. 이것이 물의 법이고 자연의 법이죠. 그런데 인간의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물의 흐름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법은 아래로 먼저 향하는 물의 법칙을 위로 먼저 향하는 사람의 법칙 아래에 두려고 합니다.      


  공자(公子)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속뜻이 무엇인지는 의견이 다양하지만 ‘지혜’라는 것도 아래로 흐르는 물의 속성을 거슬러 형성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죠.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입니다. 물의 본성을 거슬러 억지로 선행을 하기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속성대로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최상의 삶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공자와 노자가 물의 속성대로, 자연의 이치대로 살 것을 가르쳤는데, 깜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삶의 이치를 바꾸려고 합니다. 시인은 공자와 노자, 부처님까지 소환해 이들을 점잖게 나무라고 있습니다. 

  물이 아래로만 흐르니까 위에 있는 사람들은 물의 덕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을 가둬, 물길을 만들어 덕을 보려고 합니다. 물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덕을 보고, 물길을 매개로 또 다른 잡다한 시설을 만들어 덕을 보려고 합니다. 물은 쓸모없는 듯, 아무 힘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하루라도 물이 없으면 모든 생명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무용(無用)하게 보인다고 하여 물의 흐름을 거스르면 우리 강산은 괴물 강산이 됩니다. 괴물 강산의 울부짖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불탄 자리에는 흔적이라도 남지만 물 지난 자리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 법입니다.   

  

  아래로 흐르는 물의 법을 본받아 우리의 정치도 아래로 흐르게 하고, 우리의 경제도 아래로 흐르게 하여 남의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덕을 보는, 그런 정치와 법치가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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