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진한 향기와 삶의 활력
-함민복
똥차가 오니 골목에
생기가 확, 돕니다
비닐봉지에 담겨
골목길 올라왔던 갖가지 먹을 것들의 냄새가
시공을 초월 한통속이 되어 하산길 오르니
마냥 무료하던 길에
냄새의 끝, 구린내 가득하여
대파 단을 든 아줌마가 코를 움켜쥐고 뜁니다
숨참은 아이가 숨차게 달려 내려갑니다
부르르 몸 떨며 식사중인 똥차의 긴 호스 입 터질까
조심, 목욕하고 올라오던 처녀가 전봇대와 몸 부딪쳐
비눗갑 줍느라 허둥대는
살내음
라일락꽃에 걸쳐 있던 코들도 우르르 쏟아지고 말아
요즈음은 배설물을 물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죠. 그러나 1970년대는 배설물이 구덩이나 정화조에 가득 차면 퍼내는 방식의 재래식 화장실이 많았습니다. 퍼낸다고 해서 푸세식 화장실이라고도 하죠. 시골에서 푸세식 화장실의 분뇨는 농작물에 유용하기 때문에 약간은 귀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똥바가지로 분뇨를 퍼서 똥장군에 담아 이를 지게에 지고 가서 들판에 뿌립니다. 냄새는 지독하지만 농작물에는 훌륭한 거름이 되죠. 도시에서는 똥차라고 불리는 위생차가 이골목 저골목 다니면서 긴 호스로 이집 저집의 인분을 흡입해 정화시설이 갖춰진 곳에 배출합니다.
금호동 산동네에 똥차가 왔습니다. 냄새가 골목에 가득 퍼집니다. 내가 먹은 것, 우리가 먹은 모든 것이 내장을 한 바퀴 휘돌아 하산을 합니다. 하산의 결과물들이 푸세식 화장실에 한데 모여 냄새를 간직한 채 웅크리고 있습니다. 냄새를 발산할 기회를 똥차가 제공합니다. 똥차를 만난 배설물은 냄새의 생기로 환생합니다. 배설물은 똥차의 호수를 통해 저장소로 들어가고 냄새는 공중으로 스멀스멀 올라갑니다. 가히 냄새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죠. 이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있을까요?
우리 몸에서 빠져나간 냄새이지만 냄새를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익살의 끝판왕입니다. 코를 움켜쥔 아주머니, 숨을 참고 내달리는 아이, 목욕한 몸에 냄새라도 묻을까 노심초사하는 처녀의 행동이 냄새의 생기만큼이나 건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막 피기 시작한 라일락 향기에 취해 있던 코들도 우르르 냄새를 피해 달아납니다. 삶에 지쳐 활기를 잃은 산동네가 위생차의 등장으로 활기를 되찾습니다.
금호동 산동네에도 봄이 왔습니다. 금호동 산동네는 온갖 꽃들이 피었을 산이었지만 지금은 농촌에서 밀려든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골목 여기저기에 봄꽃이 피었습니다. 봄꽃 사이로 위생차가 등장했습니다. 봄꽃의 향기보다, 라일락의 진한 향기보다 산동네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배설물의 향기가 역설적으로 산동네 사람들의 삶의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냄새가 삶의 활력이 되는 장면을 익살스럽고도 건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