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눈물에 가슴은 젖고
-함민복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 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이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금호동 산동네는 도시화의 바람이 불기 전에는 노루들이 살았던 산이었습니다. 1960년대 시작된 경제개발의 흐름을 타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노루의 집을 사람의 집으로 만들었죠. 금호동 산동네는 산을 깎아 지은 집들이 산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옹기종기 붙어 있었습니다. 산중턱에 자리잡은 화자가 맞은편 산동네를 봅니다. 산의 형상을 온전히 간직한 전깃불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저렇게 많은 집에 누가 들어와 사는지 생각해 봅니다.
「흥왕리 방앗간」의 ‘설희씨’네 가족들도 근대화의 된서리를 맞아 농촌을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유덕 아범」의 ‘유덕 아범’도 시내버스와 종묘상의 등장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왔습니다. 「낚시터에서 생긴 일」의 ‘변경철 씨’도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이 수몰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금호동 달동네로 왔습니다.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드니 금호동의 산은 노루의 집에서 사람의 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산을 점령한 사람들의 눈에 달이 무척이나 가깝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달동네라 명명한 거죠. ‘달동네’라는 이름은 낭만적이지만, 달동네 사람들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은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고 산을 오르듯 집으로 돌아옵니다.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도착해 빨래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몸도 씻어야 합니다. 계곡물 소리가 이제는 하수도 물소리로 바뀌어 밤새 흘러내립니다.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밤새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 새벽녘에 들리는 하수도 물소리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동맥이자 살아있음의 증표입니다.
금호동 산동네를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릅니다. 경사가 가파른 만큼 하수도 물도 가파르게 흘러내립니다. 물이 가파르게 흘러내리니 하수도에 담긴 썩은 냄새를 맡을 틈이 없습니다. 살아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삶의 경사가 너무나 가파릅니다. 달동네 사람들의 이런 힘겨운 삶의 모습에 화자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냅니다.
화자는 새벽녘에 하수도 물소리가 들리는 도랑 옆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워 뭅니다. 화자는 그들의 삶에 공감하며 하수도 물소리를 정겹게 느낍니다. 순간, 화자는 새벽 하늘에 엷게 빛나는 달을 봅니다. 달의 눈물을 봅니다. 어쩌면 달의 눈물이 아니라 화자의 눈물이자 금호동 산동네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온 달동네 사람들의 눈물인지도 모릅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 저마다의 꿈이 있어 도회지로 왔지만 새벽달을 보니 고향 생각이, 가파른 삶의 현실이 그들의 눈망울을 젖게 만들었습니다. 달을 바라보면서, 하수도 물소리를 생산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으로나마 더듬어 가던 화자는 자신의 가슴이 눈물로 젖는 아픔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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