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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01. 2021

살구골 저수지의 봄

살구골 사람들의 꿈

        살구골 저수지의 봄

                                    -함민복     


    살구골 저수지에 살구꽃 피지 않는다

    물 흐려져 초등학생들 봄소풍 나오지 않고

    낚시꾼들 휘두르는 카본대 끝에서 야광찌만 반딧불로 날아     


    살구골 사람들


    살구골 저수지가 더 빨리 오염되길 바란다

    살구골 저수지 오염되어 농업용수로 쓸 수 없어야

    절대농지 풀리고 땅 팔려

    도회지로 떠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만 붉다          


  밤이 많이 나는 동네는 밤골[栗谷(율곡)]이라 하고, 살구가 많이 나는 동네는 살구골[杏谷(행곡)]이라 하죠. 봄이면 살구골에는 살구꽃이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살구꽃이 만개할 때쯤 초등학생들은 살구골 저수지로 소풍을 갑니다. 살구골 저수지는 살구꽃으로 경치기 좋은 것도 있지만 물이 깨끗해 살구골 들녘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농사지으며 마음만은 넉넉하고 풍요롭게 인심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도회지에서 온 낚시꾼들로 인해 저수지 주변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닐 공간은 낚시꾼들의 야광찌가 날아다닙니다. 낚시로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이고, 매운탕을 안주로 밤새 낚시꾼들의 술판이 벌어집니다. 술병과 매운탕 잔반들과 쓰레기들이 쌓입니다. 쓰레기와 쓰레기에서 풍기는 악취와 악취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저수지 주변 풍광을 어지럽히고 저수지 물을 오염시킵니다. 어쩌면 저수지 상류에 공장이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살구골 저수지 주변을 수놓았던 살구꽃은 피지 않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찾지 않으니 살구꽃은 필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살구골 사람들은 살구골 저수지가 빨리 오염되기를 바랍니다. 도회지에서 온 낚시꾼들은 살구골 저수지만 오염시킨 것이 아니라 살구골 사람들의 마음도 오염시켰습니다. 대대로 마음 넉넉하게 농사짓던 사람들의 마음은 도회의 물질적 가치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비료값이나 농약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농사를 집어치우고 도회지로 나가 도시 근로자가 되려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잠시 도회지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삶의 터전을 도회지로 옮기려고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를 바랍니다. 땅값이 올라야 도시 변두리에 허름한 집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땅값이 오르기 위해서는 절대농지가 풀려야 하고, 절대농지가 풀리기 위해서는 오염으로 농사짓기에 적절하지 않은 들판이 되어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살구꽃이 피지 않은 이후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197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라면 자신이 살았던 마을이 오염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맑고 고운 자연의 풍광으로 남아있기를 바라겠죠. 송사리가 개울에서 헤엄쳐 놀고, 메뚜기가 들판을 뛰어다니고 살구꽃이 마을을 덮는 그런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죠. 그러나 1970년대는 어떤 가치가 마을 사람들을 사로잡았는지, 어떤 정책이 마을 사람들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았는지, 마을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도회지로 나가고자 했습니다. 무엇이 농심(農心)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요?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쳤던 사람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오염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 시는 조용하면서 강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Unsplash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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