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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Nov 15. 2021

낮출수록 높아지는 가치

정지상(鄭知常)과 김부식(金富軾)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이라는 시화집(詩話集)에 실려있는 고려시대 문장가 정지상과 김부식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저술한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고, 정지상은 ‘송인(送人)’이라는 이별가의 백미를 지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습니다. 정지상이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琳宮梵語罷(임궁범어파) 

  절[琳宮]에 염불 소리 끝나니

天色凈琉璃(천색정유리) 

  하늘 빛이 유리처럼 깨끗하구나     


  이 구절이 마음에 든 김부식은 자기가 뒷부분을 완성하겠으니 이 시를 달라고 합니다. 정지상은 거절합니다. 훗날 정지상은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하고 귀신이 됩니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습니다.      

柳色千絲綠(유색천사록) 

  버들가지는 천 가지가 푸르고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복숭아꽃은 만 점이 붉구나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치면서, ‘버드나무 가지가 천 가지인지, 복숭아꽃이 만 점인지 누가 세어 보았느냐?’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쳐 주었습니다.  

   

柳色絲絲綠(유색사사록) 

  버들 빛은 가지마다 푸르고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복숭아꽃은 점점이 붉구나     


  ‘千絲綠(천사록)’을 ‘絲絲綠(사사록)’으로, ‘萬點紅(만점홍)’을 ‘點點紅(점점홍)’으로 한 글자씩만 바꾸었을 뿐인데 느낌이 새로운 시가 되었습니다. 시(詩)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아 엮은 ‘시화집’의 내용이라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에 정지상이 김부식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이 지은 두어 구절을 김부식에게 주었다면 정지상은 오래 살아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지상은 작가의 양심에 비춰보아 자신의 창작품을 남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지상의 판단을 평가한다면, 해(害)가 되더라도 옳음을 기준으로 판단한 ‘시이해(是而害)’가 될 것입니다. 김부식의 판단에 대한 다산의 평가는 아무래도 ‘비이해(非而害)’가 되겠지요. 함민복 시인의 ‘물’이라는 시도 ‘수용’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소낙비 쏟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수직을 경험해 보셨으니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르실 수 있는 게지요

수평선에서 태양을 걸 수도 있는 게지요

            -함민복, ‘물’     


  소낙비의 원래 집은 하늘 꼭대기입니다. 모든 것을 굽어보는 위치이지요. 높낮이로 보면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집니다. 땅에 떨어진 소낙비는 하늘을 보며 옛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지요. 비가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는 가장 낮은 곳부터 채워 나갑니다. 가장 낮은 곳부터 채워 나갔는데 태양과 대등한 위치가 되었습니다. 낮출수록 높아진다는 말이 입증되는 순간입니다. 

    

  ‘노자(老子)’는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上善若水(상선약수)]’고 했습니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요. 장애물을 만나면 다투지 않고 돌아갑니다. 만물을 공평하게 대하고 모든 것을 이롭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수평선을 만들어 달도 별도 태양도 걸 수 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몸을 낮추었는데도 원래 있던 자리보다 높은 하늘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이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인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시인의 관찰력과 인식력이 물과 태양을 대등한 위치로 만든 겁니다. 시인은 삶의 이치를 설명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게 해주지요. 시인의 특이한 능력입니다.


  정지상은 시의 일인자로, 김부식은 산문의 일인자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를 읽기 전에 함민복 시인의 이 시를 먼저 읽었다면 위의 설화는 없었을 겁니다. 김부식이 몸 낮추어 더 낮은 곳으로 향했다면, 그래서 정지상을 높여주었다면 김부식은 오히려 자신의 문장을 태양에 걸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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