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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속죄해야만 스스로 용서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

by 무니

요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열심히 읽고 있다. 내가 접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만화뿐이었는데 성인이 되어 책으로 읽으니 어릴 적 기억이 살아나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과 커서 드는 다양한 생각들에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인상 깊은데 그중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트로이 전쟁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헥토르, 아킬레우스 등의 유명한 영웅들도 있지만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이름도 들어봤을 것이다. 파리스 왕자가 여신 3명의 황금 사과를 건 자존심 대결에서 아프로디테의 편을 들면서 뺏은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의 형이기도 한 인물이다. 이 아가멤논이 아트레우스 가문의 사람이다. 아트레우스 가문은 탄탈로스와 니오베라는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 하기도 했다.


탄탈로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신들의 총애를 받았다. 이 신들의 총애를 보답하기 위함인지, 신들을 속여보고자 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들에게 자신의 자식인 펠롭스를 죽여 인육을 대접한다. 이를 눈치챈 신들은 분노했고 탄탈로스를 하데스의 연못에 빠뜨리고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숙이면 물이 사라지게 했다. 그리고 연못 위에는 과일이 매달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손을 뻗으면 바람이 불어와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탄탈로스는 영원한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니오베라는 인물도 유명한데 니오베는 탄탈로스의 딸로 암피온과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한다. 강한 권력을 갖고 부유했던 니오베는 용맹한 아들 7명과 아름다운 딸 7명을 슬하에 두었다. 집안도 좋았고, 결혼 생활도 훌륭했으며 자식들마저 너무 잘난 나머지 니오베는 오만해졌고 신들을 모욕하기에 이른다. 여신 레토의 신전에 공물을 바치던 사람들에게 레토는 자식도 둘 밖에(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없는데 왜 레토를 숭상하냐면서 핀잔을 주고는 그 공물들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했다. 분노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니오베의 아들과 딸을 모두 활로 쏴 죽이고, 니오베는 그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가 돌이 되었다.


탄탈로스가 아트레우스 가문의 1대 불행아(?)라면 펠롭스와 니오베는 2세대인 셈이다. 다만 펠롭스는 신들이 다시 살려주어 여러 자식을 낳게 되었다. 그중 첫째가 아트레우스 둘째가 티에스테스인데 아 가문의 불행은 이들 3세대에게까지 내려온다. 티에스테스는 형의 아내를 사랑하여 바람을 피우고 아트레우스는 분노하여 티에스테스의 어린 자식 둘을 죽여 티에스테스에게 먹게 했다. 아트레우스의 이러한 행위는 또한 신들의 저주를 불렀고 그 저주는 아트레우스의 아들인 아가멤논을 향하게 된다.(저주가 4대째로도 내려온다.)

43071_27922_0700.jpg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클리타임네스트라>, 피에르나르시스 게렝, 1817년

아가멤논은 탄탈로스의 아들 펠롭스의 아들인 아트레우스의 첫 번째 아들이다. 아가멤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결혼하고 슬하에 오레스테스라는 아들 하나와 이피게네이아와 엘렉트라라는 딸 둘을 두었다. 이 중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순풍을 기원하며 희생시켰다. 그리고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티에스테스의 아들 아이기스토스와 부정을 저지른다. 즉, 남편의 사촌과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무슨 이런 집안이 있나 싶다.) 게다가 남편이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켰으니 남편에 대한 정이 더더욱 남아있지 않았다. 아가멤논은 귀국 후 아내와 아내의 정부에게 살해당한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지게 되고 두 가지 죄 사이에서 고민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그냥 내버려 두는 죄를 저지를 것인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대신 어머니를 죽일 죄를 지을 것인가.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에게 어찌할지를 물었고 아폴론은 어머니를 죽이라고 하여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여 복수를 한다.

201707150431095203_1.jpg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의 <오레스테스의 후회>

여기까지만 읽더라도 머리가 어질어질할지 모르겠다. 5대에 걸쳐 신들의 저주를 받거나 가족끼리 서로 죽이는 살육전을 벌인 이 가문의 불행을 끝낸 건 다름이 아닌 오레스테스였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죽이고 스스로 엄청나게 괴로워한다. 분노의 여신 에리니스들이 오레스테스를 괴롭힌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스스로의 자책감을 그렇게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아트레우스 가문 중 유일하게 자신의 죄를 괴로워하고 속죄하려 했던 것이다. 오레스테스는 아테나 여신 앞에서 스스로 변호했고 아폴론 역시 자신이 시킨 것이라며 오레스테스를 감쌌다.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의 변호를 받아들이고 오레스테스를 괴롭힌 분노의 여신들을 설득했고 이들은 자비의 여신 에우메니스로 바뀐다. 이로써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는 끝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이 부분이 매우 인상 깊다. 인생을 살며 죄를 짓지 않은 인간은 없겠으나 자신의 죄를 속죄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여기서 속죄란 자신으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과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고통스럽게 겪는 자책감을 느끼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것일 거다. 우리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잘 지내고 선한 사람들은 자책하며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 부분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이건 그리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트레우스 가문의 탄탈로스와 니오베는 오만함이라는 죄를, 티에스테스와 클리타임네스트, 아이기스토스는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죄를, 아가멤논은 딸을 희생시킨 죄를 지었으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고 어떤 자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뻔뻔했던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속죄한 오레스테스만이 마음속 자책감을 덜고 저주를 끝낸다.


때로 뻔뻔하게 자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며 괴로워한다. 분노의 여신 에리니스들이 현대에 사는 우리들도 괴롭히는 것이다. 술로 이를 잊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거나 게임을 하거나 도박에 빠져 이를 잊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 에리니스들을 직면해야 함을 알려준다. 이 에리니스들을 직면하고 자신의 잘못을 잊지 않고 속죄하는 것만이 에리니스들을 자비의 여신 에우메니스로 바꿀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속죄만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라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그 잘못을 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말아라.(장 자크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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