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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하얼빈>을 읽고

안중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by 무니

처음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을 잘 하진 않았다. 예전 김훈의 <칼의 노래>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제 <칼의 노래>의 내용이 기억도 안 나고, 왠지 읽어야 할 것 같은 묘한 의무감이 있었던 탓에 다시 읽어 보았다.

2022-09-25_20-48-45.png 책 앞 부분의 둘의 이동경로가 써 있는 것부터, 둘의 여정이 일지처럼 기록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책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북쪽으로 떠나는 여정,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을 그만두고 하얼빈으로 떠나는 여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특별히 안중근을 엄청 영웅적으로 묘사하지도, 이토 히로부미도 어마무시한 악당처럼 묘사하지도 않은 채 그냥 두 사람을 관찰하듯이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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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 영웅스러운 면모가 돋보인다.

이 점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 색다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안중근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작품을 들라고 하면 대부분 뮤지컬 <영웅>을 들 것이다. 난 그 뮤지컬을 직접 보지 못 했으나 안중근이 법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우렁차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나열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절대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은 "영웅"이라는 제목과 딱 알맞았다.


그러나 <하얼빈>의 안중근은 그렇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이토를 죽이는 일에 대해 고민하며,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하고 내 일로 인해서 실망할 천주교 주교들에 대한 걱정도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도 담담하다. 책에는 목소리가 없지만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생각을 잘 정리해 읊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그 속에 단호함도 있지만.


우리는 항상 영웅이란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한다. 뭔가 저런 사람은 대단하고 어찌 저렇게 하는지 신기하고. 그러나 이 소설에서 안중근도 그 단호함 속에 수많은 머뭇거림과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점이 새롭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고른 이 문구는 이 책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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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한들,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에 어떻게 흔들림이 없겠나. 마블의 영웅들처럼 가볍게 적을 제압하고 죽이는 일은 현실에서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다잡고 방아쇠를 당기느냐, 당기지 못하느냐가 범인과 영웅을 나누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한 국가와 국민들이 침탈당한 자유의 권리를 위해 혼자서 그 흔들림을 다잡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던 용기와 그 후에 결과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한 인간의 모습에 경이를 느낀다. 영웅이 영웅다운 것은 범인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범인들의 고뇌를 다잡고 행하는 것에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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