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 이유
"시험을 본다"라는 말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다. 아니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요새 시험을 봐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와 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도대체 아이들은(모든 아이들은 아니겠지만) 왜 시험을 보고 싶어하는 것인가.
먼저 시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학창 시절 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시험일 것이다. 대부분은 이 시험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고, 점수가 나와 나와 다른 사람을 상대적으로 비교하기 때문에 간혹 불쾌함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부담과 불쾌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학습에 동기를 부여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대부분 시험을 보길 원하는 학생들은 아마 이 동기에 강한 자극을 받는 학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을 잘 봤을 때의 뿌듯함,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인정을 받는 기분. 재미없는 공부의 몇 안 되는 환희의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시험에 반대하는 편에 서있다. 물론 나도 모든 시험에 반대하진 않는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어" 교과에서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다.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학생의 성장면에서나, 국어 교과적인 측면에서나 그것이 그리 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선 교과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국어 교과는 사람마다 나누는 게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영역을 나눌 때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문학, 문법으로 나눈다. 이 영역은 각자의 목표를 갖고 있다. 내가 생각한 목표는 이렇다.
첫 번째, 말하기와 듣기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원활한 소통이라는 것은 가까운 친구 사이부터 어색한 처음 만난 사이의 모든 내용을 포괄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우리말을 이용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대중 앞이나 미디어에서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명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말하기를 정확하게 귀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쓰기와 읽기 역시 말하기 듣기와 마찬가지로 타인과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문자를 통해서 하는 소통 방법이라는 것이다. 글로써 자신의 말과 생ㄷ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글은 쉬우면서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감정이나 경험을 표현하는 글이라면 이를 통해 독자에게 인상이나 감동도 줄 수 있어야 할테고. 읽기는 이러한 글들을 읽고 작가와 메시지와 글이 쓰여진 시대와 문화를 이해하여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문학은 인류가 수천년간 쌓아온 창의적인 표현들의 묶음일 것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즐기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일반적인 글과 다르게 A를 보여주면서 B,C,D를 느끼게 하는 것이 문학이다. 사람들은 문학을 통해 사람과 사회, 문화를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슬픔, 감동 등의 다양한 감정을 겪는다. 문학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보다 창의적으로 표현하며 자신을 새로운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네 번째, 문법은 위에 말한 모든 언어 활동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련의 언어 규칙들을 이해하고 체화시키는 것에 목표가 있다. 문법이 존재하지 않으면 말하기와 듣기에서 소리는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하며 쓰기와 읽기, 문학 역시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관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문법을 창의적으로 파괴하며 어떤 효과를 얻는 것 역시 문법 영역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이러한 영역 목표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는데, 내가 생각할 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이러한 영역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장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말하기와 듣기 영역은 말하기 대본을 주고 그 대본을 가지고 문제를 내는데 이건 말하기 듣기를 가짜로 받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읽기 영역이 그나마 성취 목표에 맞게 문제를 낼 수 있는 영역이며 "쓰기"는 가능하지만 공정성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시험 영역에서 쓰기는 정답이 정해진 것만 써야 하는 큰 제한에 걸리게 된다. 논술형(의견을 근거에 따라 서술)은 우리나라 중간, 기말고사에선 역풍에 맞기 쉽고 학생들도 원하지 않는다. 문학은 문제 맞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문법도 지식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그나마 시험에 부합하는 영역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측정하는 평가 방식이기 때문에 지식을 측정하는 영역에서 유효하다. 그러나 국어 교과는 기본적으로 기능 교과다. 즉, "~을 안다"라는 게 중요하 게 아니라 "~을 할 수 있다"가 중요한 교과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5개 중에 하나 찾아 고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교과다. 따라서 난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 국어 교과에서 고사는 교과 측면에서 그리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밖에 시험은 수업 측면에서도 교사가 지식 위주의 수업을 강요하게 한다. 문제당 점수의 균형과 45분~50분의 시험 시간의 적절성을 위해 시험 문제는 대략 20~25문제 내외로 출제되어야 한다. 이 문제들이 전부 다양하게 출제되려면 많은 지식 요소가 필요하며 수업 시간에 더 세세하게 지식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이 진짜 익혀야할 기능적인 요소는 간소화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식 내용이 15문제 정도밖에 낼 분량이 없다면 나머지 문제는 다소 불필요한 지식 영역에 쓸데없이 할애해야 함을 의미하고 학생들도 무의미한 지식을 암기하는 연습밖에 되지 않는다.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국어 시간에 배운 지식을 떠올려보라 하면 기억나는 지식 요소가 많지 않다. 오히려 크고 난 다음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능력은 다른 사람들과 말과 글로써 소통하며 지낼 수 있으며 대중 앞에서 혹은 중요한 미팅에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일상의 삶에서 문학 등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들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이러한 능력들을 관심밖으로 미루어 버린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시험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그게 의미가 없다한들 실제적으로 인정받는 능력이니까. 다만, 국어 교과에 한해서 중학교 때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시의 분위기가 어떻고, 소설 속 단어의 의미를 5가지 중에 하나 고를 시간에 책 한 줄을 더 읽는 것이 더 유용하다. 국어 문제 푸는 기술은 고등학교 때도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은 학생들이 많은 양의 글을 빠르게 읽고 이해하기 때문에 문제를 푸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몇 년 전 내가 가르쳤던 학생의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그 학생은 책도 자주 읽었고 친구들과도 대화에 문제가 없었으며 발표 능력도 우수했고 글도 잘 쓰는 학생이었다. 국어 측면에서 이 학생은 단연 그 교실에서 가장 빛나는 학생이었는데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었다. 그리고 날 찾아와 "선생님. 전 국어는 못하나봐요."라고 말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학생은 정말 국어를 못하는 것인가?
중학생이라면 적어도 국어에 한정해서는 문제 풀이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한 번 더 해보고, 글을 한 줄 더 써보고, 책을 한 줄 더 읽는 것을 권한다. 그게 국어를 잘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