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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에 갇혀 신뢰를 잃어가는 학교에서

교사의 떨어지는 평가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

by 무니

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어릴 때부터 국어를 남부끄럽지 않게 했다. 모의고사를 치르면 곧잘 1등급을 맞았다. 국어 문제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교사가 꿈인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사범대도 국어교육과를 골랐다. 하지만 국어교사가 된 후에 깨달은 건 국어 모의고사 문제를 잘 푸는 것과 국어를 잘 하는 것은 완전히(이 표현을 100번을 써도 부족하다.)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이 시험에 대해 하는 불평은 다양하지만 국어 시험 문제에 대한 논란은 꽤나 한결같다. 대표적인 논란이 "작가의 의도는?"에 대한 문제다. 이 문제에 따르는 반론은 "작가한테 물어봤냐?"이다. 작가가 생존해 있지 않다면 논란이 덜할 수도 있지만 생존해 있는 작가가 "난 그런 의도로 쓴 게 아닌데?"라고 말해버린다면 가만히 있을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국어 문제가 이렇다. 정확히 딱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라는 게 존재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런 논란을 방지하고자 여러 장치들을 넣는다. 정답에 가까운 선지를 넣고 확실히 아닌 것들을 넣는다든지, 맞아보이지만 확실히 틀린 내용이 포함되도록 일종의 말장난(?)을 넣는다든지. 혹은 "가장 ~한 것은"이라는 표현을 통해 문제의 논란을 없애고자 한다.


아마 나 말고 더 많은 국어 선생님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우리나라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정함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논란의 여지없이 그것이 답이어야 하고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시험은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교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한 정답을 잘 허용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험 문제에 시적 표현을 생각해 내어 적으라는 문제를 냈다고 해보자. 이 문제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표현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독창적인 표현을 쓴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다소 뻔한 표현을 쓴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썼다고 가정해보자.


이 선생님은 어마어마한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슨 근거로 그것을 독창적이라고 판단하는지, 무슨 근거로 그것을 뻔하다고 판단하는지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는 애초에 문제를 출제하기 전에 학교 내부에서 다시 내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지만 말이다. 어쨌든 문제에서 정답 기준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지 않기란 대한민국 학교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혹자는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시험에서 교사 한 명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채점을 하면 억울한 학생들이 나올테니까. 물론 일리 있는 말이지만 이 공정성 논란에 갇혀 정작 학생들은 필요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다.


예를 들어 국어 교과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1) 작문: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다양한 조건의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2) 독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고 이해하며, 이 글을 바탕으로 더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는가?

3) 화법: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표현을 잘 듣고 반응할 수 있는가?

4) 문학: 문학 작품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가?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현재 시험에서 채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글을 잘 쓰는 기준은 누가 판단할 것이며, 확장된 사고의 기준은 무엇으로 삼을지, 의견과 감정을 잘 표현하고 반응하는 것은 무엇인지, 문학 작품의 감상 중 올바른 감상이 무엇인지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이런 중요한 요소들이 시험에서 제외된다. 시험에서 제외되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요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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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서 작문 문제로 낼 수 있는 게 이런 문제들이다. 위 문제는 2022 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작문 문제다. 학생은 작문 영역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게 재밌는 지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를 낸 출제자를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출제자가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이 중요한 수능 선택형 문제의 특성상 주어진 글을 올바르게 수정하려면 어떻게 수정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문제밖에 못 내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건 학생들이 그 글을 쓰게 만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름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읽기와 쓰기, 말하기, 듣기, 문학을 배웠음에도 문학을 즐기는 법은 학교 밖에서 소수의 학생만 배우며 글을 쓰는 법을 모르고 토론하는 법, 발표하는 법조차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12년을 영어를 배우고 왜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냐고 하지만 국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수행평가 등을 통해서 이런 능력들을 키워주고자 노력하지만 문제 푸는 능력이 더 우대받는 것이 현해 한국 학교의 현실이다.


이 문제의 원인을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긴 어렵다. 이미 교육의 목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되어버린 이상 시험 문제 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런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도 탓할 수가 없고, 이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학교 환경에서 시험 문제를 저렇게 내는 선생님들을 탓할 수도 없다. 저런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교육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굳이 지적하자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 환경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특히 교육 환경 중 공교육에 대한 낮은 신뢰는 이 문제의 해결을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 교사가 더 좋은 글이라고 더 높은 평가를 했을 때 교사의 판단은 신뢰받기 어렵다. 교사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평가 관련하여 소송이 심심치않게 들려오는 것은 그만큼 교사의 판단에 대해 사람들의 믿음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어 교과에서 교사가 학생의 성취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다면 국어 교과에서 평가할 수 있는 요소들은 전부 의미를 잃어버린다. 교사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저런 능력을 평가하기보다 5지 선다로 평가하고자 할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교사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교사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평가를 공정한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할 것이다라고 보장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고 해서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어른으로써 부끄럽다. 그럼 난 교육자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육계에 뿌리깊게 내린 서로간의 불신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사실 가장 명쾌한 해답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구성하는 3주체가 있는데 "학생, 교사, 학부모"이다. 현재 한국 학교에서 이 3주체간의 소통은 걸음마 수준이다. 학생과 교사는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부모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다. 학부모들이 교사와 소통하는 경우는 담임 교사와 학생 지도, 진학 관련이 전부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학부모 총회라는 행사도 학교의 교과 교육의 평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교는 매우 드물다.


내가 재직했던 학교에서 딱 한번 교과교사와 학부모가 만나 교과 수업의 방향과 평가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학부모들이 참석하기 쉬운 저녁 6시에 행사 시간을 잡고 교과 교사들이 학년별로 장소를 나눠 각 교과의 평가 목적과 결과를 소개하고 앞으로 평가 방향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학부모와 진지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기에 학부모들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해당 교과 교사의 교육 방향과 평가의 이유를 납득하고 만족해하며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끝나고 이야기를 나눈 한 학부모님은 선생님들이 이렇게 평가를 열심히 하는줄 몰랐다고 직접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신뢰는 이렇게 형성된다.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굉장히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교사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연수들을 진행하고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교사 평가를 진행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교사가 평가 역량을 갖추는 것이 가장 기본이겠지만, 설령 갖추더라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이 교육 환경에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은 만남뿐이다. 학생들에게 평가의 순서나 방향, 기준을 명확하게 안내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만나 이런 지점들을 직접 설명해야 한다. 직접 설명하고 학부모들도 걱정되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평가에 대한 진지한 학교 구성원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서로 만나는 것에 대해 불편해 한다는 점이다. 학부모들은 바쁜 시간에 학교에 설명을 들으러 올 짬을 내기가 어렵기도 하고 교사들도 이런 행사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심리적인 부담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만나지 않으면 불신과 의심이 쌓이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대화를 통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공정성 논란을 딛고 정말 아이들에게 키워줘야 할 능력들을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진정 미래에 필요한 능력들을 길러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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