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글쓰기 수업은 왜 실패하는가

쓰기 기술에만 매몰됐던 수업을 돌아보면서

by 무니

국어 교사가 해야할 수업은 여러가지가 있고 난 대부분의 수업이 쉽지 않다. 교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나마 쉬운 것을 고르자면 "문법" 정도랄까. 문법이 그나마 수업하기에 쉬운 이유는 가르쳐야 할 내용 요소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르쳐야 할 개념들이 있고 그 개념들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면 되니까. 물론 그것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같은 원리로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무언가를 창작하게 만드는 일이다. 글을 쓰든, 발표를 하든. 작문이나 발표가 가르쳐야 할 개념이 없진 않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글을 쓰고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보니 수업이 잘 조직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표정에선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지?"라는 말이 쓰인다.


이런 이유로 글쓰기 수업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나름 글쓰기 수업을 재밌게 만들어보겠다고 별 짓을 다했다. 지금부터 내가 한 "별짓"과 함께 이 별짓이 왜 실패했는지 써보고자 한다.


우선 신문사에 취업해서 특집 기사문을 쓰는 설정부터 만들었다. 아이들은 순진해서 이런 설정만으로도 꽤나 호기심 있게 접근한다. 그리고 학급에서 편집장을 뽑아 그 편집장이 팀을 꾸리게 했다. 조장이나 편집장이나 결국 같은 것이지만 "편집장"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관심있어 했다.


팀을 구성한 후 각 팀에게 주어진 미션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골라 그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특집 기사를 쓰게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소수자로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 여성, 남성, 노인, 외국인 등 자유롭게 선택했고 이들을 차별하는 사례들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 이 자료들을 활용해서 글을 쓰게 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국어과 교사가 아닌 분들에겐 꽤 그럴듯한 수업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쓰기 수업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기보다 그냥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를 굳이 한 문장으로 서술하자면 "수박 겉핥기"랄까.


내가 읽었던 책에서 쓰기라는 건 자신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그랬다. 자신의 삶과 괴리된 글은 재미가 없다나?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자신의 삶만 가지고 글을 쓰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래도 교사인데 아이들에게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않나. 난 이 당연한 진리를 잃고 아이들의 삶과 유리된 글을 쓰게 했다. 아이들이 살면서 장애인이 차별 당하는 것을 얼마나 고민해보았겠나. 성소수자는 만난 적도 없었을 것이고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도 깊게 체감할 나이는 아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곤 자신의 머리가 아닌 인터넷에 있는 소수자에 대한 자료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조합할 수밖에. 자신이 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문제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은 담기지 못한 채 그 소수자들을 동정하는 듯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무책임하게 선택권을 줄 것이 아니라 내가 주제를 골라주고 해당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전에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자료를 같이 읽고 함께 토론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늘려나가야 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문제를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고 자신의 삶에서 글쓰기가 출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어떤 단계로 쓰는지, 자료는 어떻게 찾으면 좋을지, 개요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글을 수정할 때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고민하다가 가장 중요한 "왜 글을 쓰는지"를 놓치고 만 것이다. 바로 이 "왜?"가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일텐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글쓰기를 참 싫어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에게 글쓰기가 재밌냐고 물었을 때 몇 명이나 재밌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글쓰기의 재미를 작게 나마 찾은 것이 학교를 다 졸업한 뒤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학교가 글쓰기를 얼마나 재미없게 만드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국어 교사로서 반성이 된다. 내 다음 글쓰기 수업은 아이들의 삶에서 쓰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글쓰기의 재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교사 연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고민만 는다. 그나마 여기라도 적어놔야 다음에 실수를 덜하지 않을까 싶어서 짧게 남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정에 갇혀 신뢰를 잃어가는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