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가르쳐야 할 곳이 공부를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
자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를 하고자 한다.
공부가 재밌는가?
이에 대해선 다양한 답이 나올 것이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나름?"
만약 여러분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이 있다면 뿌듯할지도 모르겠다. 학생이 나름 공부의 재미를 느낀다는데 얼마나 대견하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가 이렇게 대답하는 걸 본다면 귀여워 보일지언정, 대견하다고까진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이 차이는 공부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에게 공부가 재밌었던 것은 공부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천재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었어도 어디가서 공부 못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으니까.(재수 없게 들렸다면 죄송하다...)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이 공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란 남들에게 인정받는 재미, 성적이 오르는 재미, 문제가 잘 풀리는 재미인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다보니 공부가 재밌을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공부로 인정받는 아이가 얼마나 될 것이며, 성적 오르는 재미, 문제가 잘 풀리는 재미를 느끼는 아이는 얼마나 되겠는가. 설령 있다한들 그 친구들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잘 풀리지 않기 시작하면 공부에 대한 흥미도 금방 시들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을 가자마자 내 흥미는 싸그리 사라져버렸다. 대학은 문제를 푸는 재미란 곳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문제집도 없었고 그 문제를 채점하면서 동그라미를 칠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로 인정받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천재들이었고 성적이 오르는 재미라는 것도 대학에는 없었다.(물론 대학에서 공부의 재미를 찾는 훌륭하신 분들은 많다.) 그러니 대학은 나에게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았던 공간 그 뿐이었다.
내가 다시 공부라는 게 재밌다고 느껴진 건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우연하게 남들이 시키지 않고 처음으로 사회과학 도서를 읽었다. 남들이 시키지 않고 처음으로 자연과학 도서를 읽었다. 과학 도서를 읽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옆의 과학 선생님께 물어보기도 했다. 사실 이게 왜 재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적인 허영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는 게 재밌었다. 남들이 말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한 세상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비록 작가와 주변 동료 선생님들이 이야기해준 것이지만 그 사람들이 억지로 나에게 말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탐구한 거니까, 내가 발견한 것이라고 우겨봐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성적이나 학점 때문에 한 건 아니니까.
세상 공부가 재밌어지다보니 내 직업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세상 공부시키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내 수업을 어떻게 하면 나아지게 할까,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성장시킬까. 선생님들과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과도 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아이들이 뭐가 어려운지, 조금 더 나아지는 것 같은지 물었다.
물론 이 과정을 거쳤다고해서 내 수업이 몇 년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수업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조금씩이라도 방향을 잡아간다는 걸 느낀다. 5년 전만 해도 난 내 수업이 잘못됐다고도 생각 못했으니까. 그 때에 비하면 큰 발전이다.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작은 뿌듯함과 나에 대한 대견함도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학교를 나온 나의 공부 과정은 세상을 배우고 그 세상에 사는 나를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느낀다.
학창 시절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했다면 지금은 나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한다. 나라는 사람이 내가 서있는 양파 같은 이 세상의 아주 얇은 부분이라도 한꺼풀씩 벗겨나갈 때 내 스스로가 뿌듯했으니까. 내가 있는 곳을 이해하고, 내가 해야할 일을 이해하고 나서야 공부가 재밌다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결국 공부란 나를 이해하고 나를 인정해 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학교는 "나"를 지워가는 곳이다. 이러니 재미가 없지. 내가 잘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시키는 것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를 드러내기보다 학교의 규칙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하는 것이 더 많다. 해맑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3학년만 되면 무기력해지고 학교가 싫어지고 "나"라는 건 다 잃어버린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고문관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작 내 수업들도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돌아보면 무턱대고 학교를 욕하기도 뭣하다.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곳이 공부를 가장 재미없게 만드는 곳이라는 아이러니는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수업 안에서만큼은 이 아이러니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굳이 더하고 싶은 말
학교에서 공부의 재미를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배워갑니다. 그 분들 덕분에 저도 조금이나마 따라간다고 느낍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