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웨이 속 리더의 모습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잘 시간이 2시간 남짓 남았기에 영화 한 편을 보기에 딱 알맞겠다 싶었다.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인 "미드웨이"라는 영화였다. 어릴 적에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을 재밌게 보았기에 "뭐 비슷하게 킬링타임용으로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틀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 보고 나서 느낀 것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미국 전쟁 할리우드 영화는 없던 애국심도 만들겠다.
2) 진주만보다 일본군도 나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미국식 전쟁 실화 바탕의 영화들이 원래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생겨나게 할 정도지만, 영화 마지막에 장엄한 음악과 함께 군인들의 실제 모습과 설명이 나오는 부분에는 뭔가 한 인간에 대한 경외심까지 들게 한다. 여기 한국땅에 있는 나도 이러는데 하물며 미국인들은 얼마나 큰 벅참을 느끼겠나.
두 번째로 진주만과 달리 일본군도 꽤 매력적으로(정확히는 인간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런 전쟁 영화에서 악역, 특히 일본군들은 항상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명령을 내리거나 일반 군인들은 결의에 차서 천황(이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공식 호칭이기도 하고, 굳이 이 호칭의 한자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쓰겠다.)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모습만 보이지, 어떤 인간적인 캐릭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미드웨이에서는 일본군들도 소위 악역일지언정 한 명의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가장 매력적으로 그려진 인물은 아마도 야마구치 다몬이라는 제독이었는데, 침착하고 상황 판단을 할 줄 알며, 부하들을 다독이며 아낄 줄 아는 인물로 나온다.(꽤나 매력적이라 찾아봤는데 공격적 성향이 강하고 미치광이라는 별명도 있었다는 거보면... 실제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마지막 패하고 항모와 함께 죽음을 맞는 부분은 이 영화에선 군인들 자체(아군이든, 적군이든)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결의에 차고 용감한, 소위 군인다운 인물들 외에도 나구모 제독의 무리한 명령에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하는 군인의 모습, 제독이 남겠다는데 그게 신경 쓰여 자기도 남겠다고 하며 눈물을 짓는 젊은 장교의 모습들은 사람이 죽어가는 죽음의 공간에서도 결국 한 명의 사람들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건 단순히 일본군뿐만 아니라 미군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진주만 영화는 동료들의 죽음에 분노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모습만이 강하게 드러났으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기 싫어하는 미군 부조종사의 모습은, 대공포를 뚫고 전진해야 하는 폭격 액션의 모습과 함께 전쟁 속 군인이 느끼는 공포를 대신 느끼게 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정리하면 위대하고 용감한 군인들이 지켜낸 미국이라는 주제 안에 그래도 전쟁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군인들의 모습, 일본군도 나름 매력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리더의 자질이 아닐까 싶은데 결국 리더의 상황 판단과 의사 결정이 이 영화의 모든 결과를 좌지우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령 진주만에서 일본에게 어마어마한 폭격을 맞고 경질되는 사령관(직책이 사령관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은 일본군의 공격에 대해 경고했던 레이튼 정보 장교에게 다음 오는 지휘관은 반드시 네 말을 듣게 만들라는 말을 한다. 즉, 리더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 진주만을 이렇게 만들었음을 인정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그런지 후임으로 오는 니미츠 제독은 레이튼의 말을 계속 신뢰한다. 다소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그걸 믿어주고자 했으며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도록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또 레이튼은 다소 괴짜 같은 로슈포르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결국 이 둘은 일본 암호 무전 속 공격 목표인 AF가 미드웨이임을 밝혀내고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까지 밝혀내 이 해전의 승리에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격 전 모의 해전에서 부하 장교가 미군이 이 기습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는 가정 하에 북쪽에서 일본 함대를 기습 공격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걸 알 수가 없다면서 부하 장교를 혼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무시한 채 일본군은 미드웨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전투 중에서도 나구모 제독은 폭격기의 폭격 장비를 교체시키는데 부하 장교가 교체 도중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했지만 또 한번 무시해버린다. 계속 무시당한 부하 장교는 교체 장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도 나구모에게 곧 완료된다는 거짓 보고를 올리게 된다. 결국 장비 교체 도중 미군의 공격을 받게 되고 해당 항모는 교체 중이던 폭격 장비들이 폭파하면서 침몰한다.
미군과 일본군 리더의 이러한 상반된 대응은 이 해전의 결과를 바꾸어놓았고 결국 태평양 전쟁 자체의 향방을 바꾸어버렸다. 그 밖에도 두려움에 떠는 부조종사를 다시 뒷자리에 앉히거나 훈련 중 조종사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는 딕 베스트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리더의 모습에 공을 들였는가 알 수 있다.
과거 인간 사회에서 리더는 최고 능력자였으면 됐다. 무력이 세계를 지배할 때 리더는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고 공부가 중요한 시대에는 가장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실제로 내 어릴 적에 반장은 공부를 어느 정도 잘하는 학생이었다.) 리더에겐 그 사회가 필요했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됐다. 하지만 지금 리더는 그럴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니미츠가 해군 전략에 대해서 좀 알 수는 있어도 암호 해독 부분에서 전문성을 갖기는 어렵듯이 세상은 너무나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리더가 모든 부분에서 다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이제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을 하고 방향성에 대한 믿음을 주는 일이다. 니미츠는 레이튼과 로슈포르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직접 로슈포르를 찾아가 그의 겉모습이 어떻든 목적 달성에만 집중했다. 믿으면서도 그들에게 해야 할 요구와 방향은 명확히 제시했다. 반면 나구모는 윽박질렀고 소통할 줄 몰랐고 믿어줄 줄 몰랐다. 그리고 승리라는 목적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무심코 우선시해버렸다. 결국 부하 장교는 그에게 거짓을 보고해버리고 만다. 딕 베스트가 나구모 같은 성격이었다면 타지 않겠다는 부조종사를 윽박질렀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능력 있는 리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도 회장(과거의 반장)의 역량으로 수업도 열심히 듣고 모범적인 학생들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난 어떤 학생이 회장으로 출마하겠다는 말에 수업시간에 잠만 자면서 무슨 회장이냐고 핀잔을 주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리더를 선택할 때 더 중요한 건 그 리더가 구성원에 귀를 기울이는가(니미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가(나구모)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승리)에 구성원들을 소통으로 공감하게 할 수 있는가(딕 베스트)를 살피는 것이다.
리더들에게 조언하는 글은 아니다.(내가 뭐라고...) 내가 리더가 됐을 때 오만한 리더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 다잡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