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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소설 원작의 넷플릭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by 무니

소설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소설은 보지 못했지만 넷플릭스에 딱 1 시즌이 올라와 있기에 여유가 있는 시간에 쭉 보았다. 내용도 흥미롭고,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만큼 드라마도 재밌었지만, 뭐 브런치에서 그런 이야기까지 할 건 아니고 조금 재미있는 걸 느껴서 그거에 대해 쓰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작품에서 다루는 사건을 잠깐 요약하겠다.


주인공 변호사 미키 할러는 지인 변호사의 죽음으로 그 변호사의 사건을 맡게 된다. 그 사건 중에 가장 큰 사건은 한 부자 게임 제작 회사의 대표 트레버 엘리엇을 변호하는 것이었다. 트레버 엘리엇은 아내와 아내의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은 트레버 엘리엇이 아내가 바람피운 것에 분노하여 아내와 내연남을 살해했을 것이라고 믿지만, 트레버 엘리엇은 아내를 사랑했고 절대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아내와 내연남을 죽인 총기나 피가 묻은 옷 등도 발견되지 않아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증거는 트레버 엘리엇에게 총기 발사 잔사(GSR, 총을 쐈을 때 나오는 잔류물들로 보통 손과 옷에 묻는다.)가 지나치게 많이 나왔다는 것이었는데 트레버 엘리엇도 자신에게 이게 왜 발견되는지 설명을 못한다. 하지만 미키 할러는 이게 트레버 엘리엇을 태운 경찰차가 전날 총기를 난사한 사람을 태운 경찰차라는 것을 알아내고 경찰차에서 GSR이 묻은 것임을 입증하고, 트레버 엘리엇을 구해낸다. 검사는 끝까지 트레버 엘리엇이 범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었고 트레버 엘리엇은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트레버 엘리엇의 아내의 지인들은 이 판결에 분노한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사건들이 얽혀있긴 하지만 트레버 엘리엇의 사건에 한정지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소설의 시선은 오로지 주인공 미키 할러의 시선으로만 따라가기 때문에 보는 나는 미키 할러의 입장을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트레버 엘리엇의 억울함이 잘 와닿는다. 게다가 검사는 정말 뚜렷한 증거도 없이 사건 현장에서 트레버 엘리엇이 발견되었다, 아내와 내연남의 바람에 분노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트레버 엘리엇을 몰아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에 트레버 엘리엇이 죽였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아내 지인들의 모습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참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미키 할러는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트레버 엘리엇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저들은 오로지 그냥 신문 기사나 소문으로, 혹은 바람피운 것에 대한 분노를 느꼈으리라는 추측, 평소 엘리엇의 행실만으로 판단한다. 이 판단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누가 봐도 증거도 남지 않은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음에도 그 의심과 분노를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모습에 참 안타까운 느낌도 든다. 어쨌든 결국 지인 중에 한 명은 결국 트레버 엘리엇을 총으로 쏴서 죽이고 만다. 트레버 엘리엇이 죽였다는 그 믿음이, 딱히 타당한 근거도 없던 믿음이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더하자면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라는 명제를 나 역시 피해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할러는 트레버 엘리엇이 사실은 정말 아내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이 장면이 나올 때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나조차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에서 피해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드라마를 보지 못하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트레버 엘리엇의 억울함에 더 마음이 가진 않았나?


이런 점을 볼 때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은 참 우스운 것이다. 트레버 엘리엇이 사용한 흉기가 발견되지 않은 점, 트레버 엘리엇에게 총기와 피 묻은 옷을 숨길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트레버 엘리엇에게 무죄를 판결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판단이다. 사실 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오히려 그게 문제였을 것이고. 다만 그렇게 고민한 것도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고자 한 것도 오히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드라마 작중 내내 트레버 엘리엇이 스마트폰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살인 사건 직후 트레버 엘리엇이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을 보고도 할러 변호사도 마찬가지지만 나 역시 별 생각을 하지 못했다.(만약 그것을 생각하셨다면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그냥 나 역시 논리적으로 판단했다고 하면서도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은 것일 테다.


사람에게 확고한 믿음이라는 것은 때로 경계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모든 측면을 다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한들 그것을 종합하여 항상 올바르고 확실한 판단을 하긴 어렵다. 우린 사람이니까 결국 마음 가는 믿음에 대해 사실이라는 점수를 더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때론 잘못된 사실도 진실이라고 믿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하고 잘못된 사실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교사인 나는 더욱더 그럴 것이고 지금껏 학생들에게 말해 온 것들 중 진실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도 없고 두렵다.


하지만 결국 우린 아무것도 알 수 없을 테니까, 변호사 할러가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라고 말했듯 우린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속을 수밖에 없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속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진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스스로를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건 내 역량 밖의 일이고. 다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다른 사람의 믿음이 틀렸다고 확신하지 않기를 경계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뉴스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 뉴스에 대해 수많은 판단들이 그 뉴스 아래 댓글창에서 일어난다. 그 뉴스가 오보였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 뉴스를 제작한 기자에 대한 무수한 판단들이 또 일어난다. 기자들을 소위 "기레기"라고 욕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멀쩡한 기자가 거의 없다면서 욕하는 모습을 보면 기사를 전혀 믿지 않을 것처럼 굴면서도 또 뉴스들에 흔들린다. 모두가 참 쉽게 쉽게 사실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트레버 엘리엇에게 판결을 내린 배심원들은 판결을 내려야 하겠지만, 우린 대부분 심지어 뉴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심판해야 할 판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당장 결정해야 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항상 두렵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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