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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Jan 13. 2024

[군생활 잘하기] 성장의 기록(6)

소통과 경영을 익히다.

[소통과 경영]을 배우는 과정

다섯 번째 보직 / 복지대장


[다시 낯선 곳, 제주에 던져지다]


    앞선 포스팅에서도 자주 언급됐던 "던져지다"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해보려 한다. 2020년 12월, 대위로 진급한 기쁨과 필연적인 인사이동(진급했으니 대위자리로 가라는 압박..)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새로운 보직으로 던져졌다. 우리 보급병과는 보직 전 교육도 전혀 없다. 즉, 늘 현장에서 잡초처럼 살아남아야 하므로 각오하고 있었지만, 낯선 땅 제주로 발령 갈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급하게 인사담당자 연락을 받은 건 목요일, 나는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상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산에서 제주로 가족이사는 어떻게 하지?", "부대는 서귀포인데, 근무지인 제주시에 관사는 있나?", "인수인계 기간은 하루라도 가능하려나?" 고민들이 가득했지만, 우선 가족에게 알려야 했다.


"여보. 나 제주로 발령 났는데.. 출근이 다음 주 월요일이네?"

    모든 게 다급하지만, 일단 침착하고 하나씩 해결한다는 생각으로 차량 선적과 배편부터 알아봤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 같던 월요일 출근을 위해 인수인계서 작성부터 수십 가지 의사결정과 희로애락 끝에 금요일에 제주도 홀로 도착한 후 임시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토요일에 인수인계서를 숙지, 일요일에 전임자 선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구두 인계를 받아 월요일에 정상출근하게 된다. 심지어 상급자가 육아휴직을 나간 상황이라, 근무지원대장 소령자리를 직무대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야.. 여기 또 던져졌네.


 이때가 군생활 4년 차, 대위진급 후 4개월이 된 시점이다.


[짬빠 덕분에 빠르게 적응한다]


    전입신고와 지휘관과의 면담 후 근무지원대장 사무실에 홀로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을 외우고, 모든 현안업무와 내년도 업무, 오전은 온전히 머릿속을 쥐어짜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할 수 있다. 부딪쳐보자"


    그동안 2명의 귀인을 멘토로 삼았고, 2명의 최악의 상사를 모셔봤으니 경험적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좋은 멘토를 따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안 좋은 인간들을 반면교사한다는 생각으로 첫 지휘관 자리라는 부담감을 안고 모든 사람들과 만남을 의도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새벽과 야간에 행정업무를 모두 보고 하루에 8시간 정도를 면담에 투자하며, 오로지 사람에 집중했다. (두 번째 멘토) L대위에게 배운 걸 활용한다는 취지였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때 소통한 결과는 부대를 빠르게 장악해 나가는데 도움이 됐다.



    크고 작은 모든 애로사항과 현안업무의 디테일이 채워지고, 공석으로 그동안 지연된 의사결정을 전입 후 3일 만에 모두 정리했다. 근로자들은 최소 일주일, 최대 몇 달 동안 기다려온 의사결정에 목말라 있었는데 시원하게 일처리를 하는 모습에 무척 반가워했고 나는 새로운 조직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하위 부서 간에도 오해와 갈등이 꽤 쌓여있었는데, 이는 세부적 업무 분장으로 문서화해 풀어나갔다. 우리 부대의 지휘관 공석을 틈타 짬처리된(?) 타 부서의 업무는 여러례를 근거로 들며 원상복구 시켰다.(6개월 걸리긴 했지만, 이런 시도하는 것만으로 부대원들의 신뢰를 얻기에 좋았다)


* 이때 상급자나 선배들의 눈치를 최대한 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러다 보면 지휘관으로서의 역량보다는 참모일 때 습관이 나올 것 같아 우려됐다.


    부대 전체적으로 일에 속도가 붙으니 비로소 나도 여유가 생겼다. 초반에 부대원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이 끝나니 한 달이 훌쩍 지나있었다. 여전히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부대의 분위기를 개선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지만, 부대원들의 참여와 능동적인 모습이 늘어가니 내 역할을 축소할 수 있었다. 직무대리 한 근무지원대 부대원들의 지지라는 첫 지휘관으로서 1차 관문을 통과했으니, 같은 요령으로 원래 맡은 보직인 해군호텔 복지대장 직원들과도 이내 융화됐다. 하지만, 해군호텔 업무는 알아갈수록 점입가경으로 더 난이도가 높아졌다.


[군인, 경영을 만나다]


  제주 해군호텔은 해군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인데 현역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공무직근로자(민간인 직원)로 구성되어 있다. 수병(병사)도 없고, 부사관으로 회계담당 1명, 군무원 관리관 1명뿐인 소규모 조직이다. 그러나 지금껏 대장이 현역 군인이다 보니 민간 근로자들과 공감대 형성도 어려웠다.(문제점 발견) 보통 5년에서 20년까지 오래 근무한 직원들이 많았고, 대부분 매너리즘에 빠져있어 보였다.(문제점 발견 22) 호텔 건축 이후 40년이라는 세월보다 더 늙어있던 건 오해로부터 비롯된 딱딱한 조직문화와 그들의 고인 물 같은 텃세였다.


    그들을 회유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지만, 가장 효과가 좋았던건 '스킨십'(직접 소통)이었다. 여기서 스킨십이란 직접 물리적으로 터치하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자세를 말한다. 입은 철저히 다물고, 의도를 숨기며, 공감하는 자세로 계속된 질문을 던졌다. 사소한 것부터 공적인 부분까지 직원들의 말을 철저히 들으려 했다. 머리가 핑 돌아가서 과부하가 올 때까지 하루 몇 시간동안 계속 듣기만 했고 필요한건 철저히 메모했다. 그리고 주요한 내용은 내부적으로 결정지은 후 업무지시는 모두 공지사항으로 부착해 구두지시가 줄 수 있는 오해를 줄였다. 무조건 직접 듣고 빠르게 결정해 그들의 걱정을 줄여주자는게 주요한 전략이었다. 또한,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근무여건이나 복지 향상에 주력했다.


  그렇게 3개월 가량이 지나니 복지대장으로서 온전한 호텔 대표(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원의 신뢰를 쌓는데도 근무지원대보다 오래 걸렸으며, 사업체의 경영은 그 자체로 낯설기까지 했다. 관련된 책과 유튜브, 각종 일화를 여러 번 읽으며 간접적으로나마 마인드 세팅을 해야 했고, 한 달 이상 업무 방향을 잡지 못해 헛발질했다. 해군 호텔은 코로나 기간 이전에도 만년 적자 시설이었고, 제주 호텔업 자체가 고급화된 호텔이나 저가 가성비 경쟁 외에 특별한 성장 없는 상태로 사양길에 들어가고 있었다. 시장 상황이 안 좋았다. 코로나 기간 동안 적자의 폭은 커가기만 했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2년간 매일 아침 호텔로 출근하며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제주호텔이 해군의 복지에
도움을 주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대장이 되고 처음 경영이라는 분야를 마주했으니 새롭고 신선했지만, 머리가 복잡했다. 답이 없는 것 같은 질문의 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머릿속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니 자료조사도 하고 발로 뛰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인근 호텔과 에어비앤비의 가격을 모두 서칭 했고, 일부는 직접 방문해 좋은 점을 모방할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로 제주 전체에 불황이 온 시기상 경영 적자를 면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첫 1년은 시설 개선과 보수에 전념했다. 우선 노후화된 시설을 고치고 문제를 찾는데 주력하기로 하고 직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를 알렸다. 이때 개별 면담을 제외한 전체 회의는 줄였고, 하고 싶은 말은 오해가 없도록 서면으로 게시판에 공지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각종 성과로 인해 해군 복지시설 간 2021년 경쟁평가에서 서울, 진해를 제치고 제주호텔이 1등을 차지한다. 이때, 직원들의 대장에 대한 신뢰가 급속도로 높아짐을 느꼈다. 근로의욕도 일시적이게 높아졌는지 객실청소담당들은 목소리부터 한 옥타브 높아져있었다. 우리가 지난 1년간 내부적으로 서로 격려해 준 것보다 상급기관의 제삼자가 인정받았다는 점이 그들에게 큰 자극이었으리라.. 그 이후 2022년 경쟁평가에서도 다시금 1등을 차지했다.


  사실 호텔 평가부문 1등 기록은 직원들의 성과급을 좌우하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메리트도 없다. (나의 성과급은 근무지원대를 따라간다) 다만, 경영자로서 첫 도전에 좋은 성과를 낸 기쁨은 큰 영광이었고, 노력한 만큼 뿌듯함은 나에게도 크게 찾아왔다. 모든 공을 잘 따라와 준 직원에게 돌리고 싶다.


[경영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경영을 처음 접하고 가장 어려웠던 게 있다. 바로 예산이다. 그동안 군인이고 공직자이기에 사실상 예산에 대한 압박은 있었어도, '없으면 그만이고 어쩔 수 없지' 생각해 왔다. 자원이 없거나 한정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하며 목표를 하향조정한 적도 꽤 있다. 즉, 타협했다. 만 원으로 붕어빵 100개를 살 수 없으니 15개만 사자는 식인데, 경영은 논리가 조금 다르다. 예산의 압박을 받아도 이뤄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붕어빵 틀을 당근마켓에서 구매해 직접 반죽을 만들어서라도 최소 90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게다가 해군 중앙복지시설은 자체 예산보다 복지기금이라는 통합 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호텔에서 번 돈이라도 매달 국가에 귀속시킨 후 1년 예산을 새로 배정한다. 즉, 내가 번 돈이 내 돈이 아니다. 적자에 대한 리스크는 적지만, 자원은 한정되고 성과의 압박은 받는 구조다.



  예산의 원가를 따지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코로나가 극심할 때 직원들의 휴직을 권고해 버텼던 것도, 원래 관성으로 직원들이 해오던 작업(제초작업, 전기점검 등) 일부를 외주화 했던 것도 모두 그 이유다. 직원들은 오히려 해고하지 않음에, 제초작업을 직접 하지 않음에 감사해했지만, 이는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보다 인원의 효율과 예산을 생각한 결정이었다.


  가구를 바꿀 때도 그랬다. 침대 프레임과 티테이블이 계속 부서진다는 시설담당의 하소연을 들을 때, "이걸 고치는데 시간을 다 쓰면 더 중요한 보수 소요는 감당 못하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내구성을 고려해 가구를 교체해 나갔다. 영구 A/S가 되는 침대 프레임으로 변경했고, 일주일간 나라장터에 등록된 모든 협탁과 의자를 찾아보기도 했다. 10년도 넘은 호텔 안내책자를 새로 디자인해 만들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안내책자를 읽다 보면 내 인상이 다 찌푸려지고, 누렇게 뜬 종이를 보고 있으면 읽는 걸 그만두고 프런트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을 것 같았다. 이용객이 읽고 싶도록 하얀색의 산뜻한 안내책자를 만들어 비치했고, 프런트의 전화 응대 소요를 줄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워크인 손님에게 더 시간을 쓰고 친절하리라 계산했다.


  게다가 연장근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해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노력했고, 동시에 한정된 예산 안에서 목표한 성과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예산이 가장 어렵고 또 내게는 큰 배움이자 새로운 경험이었다. 예산의 부족이라는 한정된 상황은 늘 발목을 잡았고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과정은 내 몫이지만, 결과는 온전히 운이다]


  솔직히 말하면, 해군호텔을 경영하며 늘 좌절했고 외로웠다. 맘같이 되지 않아 속마음은 조급했고, 매출도 잘 올라와주지 않았다. 코로나 거리 두기에 따라 매출이 들쭉날쭉 했고, 직원들과 마인드 일치화가 안 돼서 부모님보다 연세가 지긋한 그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27살짜리 초짜 호텔 대표가 얼마나 우수하게 할 수 있었을까? 훌륭한 관리관, 훌륭한 시설팀장, 훌륭한 회계관을 만나지 않았다면 노력할 마음보다 시간 때우기만 했을지 모른다.


"어차피 안돼.
대충 1-2년 쉬다 가자"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늘 나를 잡아주는 좋은 직원을 만난 것도, 끝내 그들을 설득해 낸 것도 그들이 날 품어준 덕분이고 내게는 큰 운이다.


  지금 돌아보면, 들인 노력에 비해서 큰 성공이 운 좋게도 찾아왔다. 직원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리스크처럼 갑작스러웠던 성과에 당황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다만,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차 안에서도 스스로에게 매일 목표를 이룰 방법을 질문하며, 희망을 잃지 않게 한 고마운 문구로 이번 챕터를 마쳐보고자 한다.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하는 것...
전 자격증도 운전면허 하나라...
다만, 하나의 목표를 노리면
그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한 번도 잊어버린 적 없습니다.
이거 하나만 잘해요.
그걸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 사장학개론 김승호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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