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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Jan 07. 2024

[군생활 잘하기] 성장의 기록(5)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내는, 인력관리의 고수.

[인력관리와 조율력]을 배우는 과정

네 번째 보직 / 저장과장


[인력관리의 고수를 만나다]


    유니콘, 드래곤, 모두 전설 속에나 있는 가상의 생물이다. 군에서도 이런 전설적인 썰들이 난무한다. 모 커뮤니티에서 오래 회자된 홀로 120mm 대전차 고폭탄(연습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육군 원사도 전설 중 하나이고, 해군으로 치자면 10m 높이의 파도가 치는데 고속정으로 항해를 나갔다느니 하는 믿기 힘든 썰이 있다. 이런 약간의 과장 섞인 전설과 썰들도 흥미롭지만, 나는 군생활 3년 차 믿을 수 없게도 '가족 같고 단합 잘되는 부대'를 목도했다.



* 함정에서 경험한 부장 2명 모두 정말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었고, 개별적으로는 잘 지내는 부대원은 있어도 구성원 모두의 단합은 불가능해 보였다. 특히, 함정근무에서 승조원들과 전우애는 생겨도 가족과 같은 깊은 애정은 어려웠다.(애증에 가깝다..)


    군생활을 시작한 지 정확히 3년 차, 대위를 갓 달고서 근무한 부산의 저장부대는 마치 나의 고향과도 같다. 분위기 좋고 단합된, 같은 목적으로 동고동락하는 우리 부대, 그리고 이 모든 걸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L 대위(선배장교)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 한다.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먼저 전역한 N대위가 내 첫 업무길잡이이자 정신적 롤모델이라면, 업무와 능력에 숙련도를 가미시킨 건 L대위였다. 제2의 롤모델로 삼았던 그는 정말 천부적인 인력관리의 노하우가 돋보였다. 그를 보고 있자면 늘 드는 의문이 있다.

어떻게 인력관리와 회유를
이렇게나 물 흐르듯 할까?

    불가능해 보였던걸 하나씩 해나가고, 상급자(전대장 등)의 무한 신뢰와 부대 실무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걸 옆에서 볼 수 있었던 건 큰 전환점이자 배움의 기회였다. 한 가지 대표적 일화를 먼저 말해보고자 한다. 부사관과 장교의 관계형성에서 모범적이었다고 느낀 사건이 하나 있다. 우리 부대에 전역 직전인 U원사가 있었다. 그는 군 생활 30년이 훌쩍 넘는, 사실상 가장 컨트롤이 어려운 노련한 부사관이었으며, 우리 보급 쪽에서도 ‘와리와리’(유명하고 한가닥 하는)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조금 안 좋게 말하면, 첫인상만 보면 '오래도록 고여서 통제가 안 되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L대위는 전입온 첫날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음지에 머무려는 그를 지속적으로 양지로 데려왔다. 때로는 회유로 차 한잔 하면서. 때때로 술 한잔 하면서 의리로, 때때때로는 약간의 자존심을 건드려 가는 전략을 썼다.

 “군생활 30년 하신 원사님에게
이건 일도 아니잖아요.
늘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 한 번을 마찰 없이, 업무를 미루지 않도록, 그리고 1인분을 해낼 수 있을 때까지 그를 공략했다.


* 사실, 나는 초반에 U원사를 없는 사람 셈 치고 일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껄끄럽기도 하고 지시를 해도 안들을 것 같은 우려했기 때문이다.


    U원사는 그렇게 몇 주 안에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그의 후배들인 부사관을 비롯해 모두가 놀랐고, L대위의 리더십을 인정하게 됐다. 이 계기로 당시 우리 부대는 누구 하나 음지로 숨지 않았다. 가장 선임인 부사관이 자기 일을 미루지 않으니 모두가 1인분 이상의 퍼포먼스도 무리 없이 해냈다. 밀린 업무가 없고 서로 나서서 머리를 맡대니 부대 분위기는 점점 더 좋아졌으며, 날로 시너지가 생겨 선순환이 이뤄졌다.


[인력과 조율로 시너지를 만들다]


    나는 중위 소위 기간 3년간 가급적이면 홀로 일하길 선호했다. 특히나 부서장이 없다시피 한 첫 함정생활에서 책임감을 많이 배우고, 또 뱉은 말을 무조건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의 습관이다. 오로지 일만 열심히 할 줄 알고 늘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초임장교라면 늘 겪는 그런 실수와 배움, 그 ‘열심’의 과정을 다 지나와 대위 계급장을 달기 직전, 새로 가게 된 보직에서 만난 L대위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그와 일하면서 배운 많은 가르침은 지금도 문제를 직면했을 때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의 과정을 갖도록 도움을 준다. 보통 일을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성격으로 다소 '돌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실수도 많았고 돌아보면 그 과정이 지저분하고 비효율적일 때도 많았다. ‘일단 하면서’ 배우는 스타일이다 보니 실행력만 좋고 사서 고생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당시의 그런 나에게 ‘능숙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결국 일이 아닌 ‘사람’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L대위는 늘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샌가 문제를 직면했을 때, 이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계획을 우선 세우거나, 이 일이 어떤 사람에게서 가장 효율적으로 소화될지 조직 전체적으로 판단하고 업무 분장하는 기술/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나 스스로 잘하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믿어주고 역량을 키워주는 그 과정이 조직 전체의 발전과 긍정적 시너지를 키울 수 있다는 걸 정말 멋지게 몸소 보여줬다.


*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첫 보직에서 만난 N대위에게서도 비슷한 면모를 많이 봤었지만 나는 그 좋은 점을 캐치할 정도의 역량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사람, 뭔가 특별하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매 순간 그에게서 느껴지는 성숙한 생각과 방향성, 그리고 실무자들이 맘껏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칭찬으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자존심을 건들기도, 술로 모든 걸 아우르기도 하는)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덕분인지 모두 자존감이 한껏 올라갔고, 부대의 분위기는 좋아지고, 업무의 시너지가 높아졌다. 일은 단 하나도 쌓이지 않고, 늘 지시하기도 전에 실무자 선에서 완료 보고가 올라왔다. 이 분위기를 유지할 수만 있어도 우린 성공한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시 우리 부대의 대장 직위가 부재임에도 부대평가에서도 늘 1위였고, 전대장님을 비롯한 누구에게도 인정받고 신뢰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큰 사고 한 건 없이, 사고 치고 우리 부대에 강제로 전입온 사람도 갱생되어 나가곤 했다. 앞에서는 단합을 외치며 조직의 중심이 되어주고, 뒤에서는 대원들을 세심하게 챙겨나가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시너지의 힘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 2년간 함께 근무하며 흡수한 ‘늘 신중하게, 또 사람중심으로’의 업무 자세는 지금도 닮아가고 싶은 ‘능숙한’ 장교의 모습이다. 그와 함께한 덕분에, 20년 8월에 계급뿐만 아니라 진짜 대위가 될 수 있었다.


사람, 사람, 사람, 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일도 사람이 중심임을 깨달았다. L대위는 지금도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좋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나의 두 번째 롤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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