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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Jan 01. 2024

[군생활 잘하기] 성장의 기록(3)

가혹한 환경에도 주어진 미션은 완료한다.

[시간관리와 바른자세]을 배우는 과정

두 번째 보직 / 함정 보급관


* 부도덕한 위인은 때론 악인이다.


야! 보급관!! 야!!!

     두 번째 근무지인 함정으로의 전입한 날이다. 긴장되는 전입신고 후 인수인계서를 읽어가던 중 불현듯 샤우팅이 들렸다.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인계해 주던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나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사관실로 달려갔다.


    그렇다. 부장이 내 전임자인 보급관 선배를 부르는 소리였다. 함정 생활은 와일드(wild)하다는 이야기도 들어왔고, 조금 더 전투적인 마인드로 자연스레 변할 거라는 우려도 들어왔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개처럼 불러도 되나요?



    전임자인 선배에게 의아한 듯 물어봤다. 아무리 우리가 군인이고 저 사람(부장)이 상급자라도,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샤우팅이 기본이면 어떡하나 싶었다. 앞으로가 까마득하고, 뭔가 잘못된듯한 위화감이 들었다.


    당시 매일같이 샤우팅(소리지르는 행위) 한 L부장에 대해 먼저 설명하자면, 사관학교를 나와 1급함 부장까지 하고 있지만 중령 진급에서 여러 차례 떨어졌고 위관장교들을 갈아서 쓰기로 유명했다. 부사관, 수병 모두 그를 피했다. (무서워서라기보단 보복성 행위와 지나친 폭언이 더러워서..) 함장님을 포함한 윗사람에게는 잘하는 거 같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고, 사람 간의 인정은 거의 없었다.


    내가 놀라서 한 질문에도 선배는 "원래 저런 사람이야~"라며 무마하고, 특별한 언지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시 전임자 선배도 욕먹을 짓을 많이 하긴 했었다. 근무 태만부터, 보급관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예산 장부 작성에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나는 전입 후 6개월치 장부를 다시 써야 했다)


    그러나, 선배라고 해도 나보다 겨우 2년 더 근무한 사람이었고, 갓 대위였던 부족한 경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처음 하는 업무에 미숙할 수 있다. 그런 부서원을 잘 품지 못하고 키워주지 못한 부장의 책임과 리더십문제가 더 크다.

 

L부장, 저러니까 진급을 못했지



    몇 가지 일화가 있었는데, 처음 전입한 소위나 하사와 같은 초임간부들을 함교에서 얼차려를 줬다던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펜을 던지는 행위, (나에게도 했지만) 멱살을 잡거나, 욕설을 동반한 폭언, 그리고 앞서 언급한 개 부르듯 사람을 부르는 샤우팅이 대표적인 그의 만행이다. 한 달을 근무하면서도 그에게 학을 뗐던 이유다.


    그의 그릇된 태도를 비난하며 '바른 자세'에 대한 충분히 반면교사할 기회가 되었다. 직급으로 찍어 누르지만, 결국 그 누구에게도 진실된 충성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란 그 말로가 참 유감스러웠다. 올바른 정신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했다면, 2년이나 1급함 부장으로 근무하고 전출 가던 그날 현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배웅해주지 않았을까? 내 기억엔 당시 배웅 나온 사람은 장교 1-2명, 부사관 2-3명 정도가 다였다.


* 사실, 조금 더 다각적으로 바라보면 좋은 점도 있다. L부장은 1급함에서 근무한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말 많은 걸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좋은 쪽이었고, 상당한 워커홀릭이었으며 합리적인 사고와 강한 카리스마로 모든 걸 개선해 나갔다. 가치판단이 상당히 빨랐고, 결과만 보면 틀린 결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성과는 독재와 매한가지인 리더십에서 과오로 모두 전락해 가려지고 말았다. 누구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최선을 다해 아부한 선배장교들도 '진급누락'으로 답했으니 해군에서 그의 쓰임새는 딱 그 정도이리라.  




[멱살잡이와 욕설에도 난 일만 한다]


     첫 주가 지나고, 정신없는 적응의 과정을 밟았다. 낮은 계급에 비해 신경 쓸게 참 많았는데, 보급관 없는 2-3급 함정은 어떻게 돌아가나 싶었다. 나름의 생존전략을 갖고 꾸역꾸역 출근하며 낮은 계급(당시 소위)으로도 어떻게든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L부장은 지시하고서 전화로 한 시간에 세  번 이상 쪼는 아주 악독한 업무방식의  사람이었다. ‘내가 시킨 거 하러 출발했냐?” “뭐 하냐?” “지금 어디냐?”를 계속 전화로 확인했다. 운전 중에 전화가 계속 오니 도로 위에서 사고 날 뻔한 적이 여러 차례, 위험하게까지 느껴졌다. 분명한 건 서로를 믿는 신뢰를 기반으로 일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일단 보급관으로서 맡은 주된 임무는 함 승조원들을 잘 입히고, 잘 먹이는 게 우선인데 L부장 비위를 맞추다 보면 그냥 말 잘 듣고 생각 없는 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바로, 나만의 시간관리다. 사실 민간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개 직원으로서는 최악이었지만, 질질 끌려가다 보면 내가 정작 해야 할 주된 업무는 모두 놓치게 되거나 밥도 못 먹고 야근하기 일쑤였으니 불가피했다. 그래서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하기로 마음먹고, 고집스럽게 시간관리를 시작했다. 내 시간은 분단위로 쪼개질만큼 촘촘했고 종종 점심도 먹지 않고 일할 정도로 일에 몰입했었다.


    또한, L부장이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도 우선 반응하지 않았다. 끌려다니지 않기로 결심했고, 사람을 개 부르듯 소리 지르는 행태가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업무적으로 틀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태도와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침 사관회의나 전화기로 호출할 때만(진짜 급한 일이므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걸어서' 차분히 사관실에 찾아갔다. 내 방식에 적응 못한 건 L부장뿐이 아니었다. 선배며 동기 하며 다 내 사무실에 와서 “L부장님이 찾으셔”라고 기웃기웃거렸지만, 그때마다 급한일 처리중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만 답했다.   


    L부장이 더 화를 내고 격분하고 분에 못 이겨할 때마다 나는 더 차갑게 식어갔다. 그리고 업무에만 집중했다. 오히려 책잡히지 않으려 근무복 세탁을 더 자주 하고, 머리를 주 1회 자르며 평소 바르지 않던 젤을 바르고, 옷은 더 단정하게 여몄다. 바른 자세로 자기관리하는데 더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멱살도 한 번 잡히고 면전에서 욕도 여러 번 먹었으나, 한 달 후 흔들림 없는 내 모습과 빈틈없는 일처리에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못된 성질이 죽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차분해진 L부장을 보며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 시간관리가 되니 밥을 굶는 일도 줄고, 야근 횟수도 줄어들고, 부장이 지시한 일을 다 하고도 여유가 생겼다.


    여담이지만, 함장 교대식을 준비하며 서로 간의 의견차이는 극을 달려갔다. 정확한 지시라도 할 줄 알던 부장도, 결국 본인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소리 지르는 것밖에 대안이 없어 보였다. 수병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나를 업무적으로 깎아내리는 부장 앞에서 당돌하게 말했다.


 그렇게 자신 있음 직접하세요.
악의적으로 윽박지르고
괴롭히지 마시고.
 애초에 이건 제 일이 아니라
정훈관 일인거 아시잖아요.

    늘 최선을 다했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헌신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 모습을 보고 L부장은 한숨을 쉬거나 비속어를 내뱉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결국, L 부장과의 2개월은 나를 강하게 단련하고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 좋은 기회였다. 물론,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없고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단시간의 시련으로 크게 성장한 계기였다. 지금은 L부장에 대한 원망과 함께 감사한 마음도 든다. 이후 근무하면서 여러 근무지에서 겪게 된 부조리나 어지간한 멱살잡이, 욕설에 흔들리지 않고, 주변의 풍파에도 나 스스로의 리듬을 빨리 되찾아가는게 답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다. 결국, 나는 위태로운 두 번째 근무지에서 [바른자세]와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배웠다. 니체의 철학은 이해하지 못해도 참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이번 글은 그 구절로 마무리해보려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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