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와의 면담

9개월동안 쌓여있던 말들

by 공원의아이들

첫 영업일은 항상 바쁘다.

월간 실적을 트래킹 하고, 비용을 가정산해서 파트너사에 전달하는 일을 첫 영업일에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첫 영업일에도 미리 전날 밤부터 쳐낼 일들에 대해 노트에 쓰고, 아침부터 쳐낼 일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바쁜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하고 출근했다.

아침 루틴처럼 하는 일들을 쭈르륵하고 있는데, 사수가 갑자기 커피 한잔 하자고 내게 말을 걸었다.

바쁜 회사인지라 이직 후 1년간 티타임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데, 티타임 요청이라니. 바로 직전일에 세 번에 걸쳐서 호되게 혼났던 일이 생각났다. '아, 아무래도 내 현 상황에 대해 전반적으로 면담 하려나보다.' 란 생각에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함께 커피를 사러 나섰다. 커피 사러 가는 동안은 서로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다가오는 연휴에 무엇을 할지 등 그냥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바쁜 회사인지라 이런 이야기 나누는 것도 드물긴 하다..!)


커피를 사서 회의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회사에 온 목적 자체가 단순 어드민 작업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그에 걸맞은 일들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 여러 단위의 일을 받아서 진행하고 있는데,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내가 한 번 위축되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어려워하는 것 같단 말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최근 모습이, 길을 잃은 것 같이 보였기에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앞으론 일을 좀 더 잘게 쪼개서, 일의 데드라인을 더 짧게 가져가는 것이 내가 헤맬 시간이 적기에 더 나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사수가 3월엔 큰 문제없이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는데, 4월엔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3월과 4월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4월부터 심리 상담을 안 받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직 후에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불안장애와 우울증으로 약을 바로 복용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확인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임신과 출산을 계획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신과 약은 복용하지 않는 편이 좋기에, 차선책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심리상담 8회 차를 천천히 해내가면서 나에 대해서와 내 불안에 대해서 더 이해하고, 나 스스로를 어떻게 토닥이는지를 배웠다. 일주일에 한 시간의 시간이었지만, 내가 회사를 버텨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고 이 시간 덕에 내가 회사를 잘 다닐 수 있었다. 그 심리상담이 종료된 게 4월이었고, 애석하게도 그때부터 내 회사 생활이 힘들어졌다.

회사사람들에겐 심리상담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 안 하고 있으니, 사수도 처음 들었을 터였다.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론은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유독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은 회사생활하면서 누구나가 받는 것이니 부담 없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9개월 만인 것 같다. 앞으론 사수에게 이야기를 가질 시간을 갖자고 조금 더 말한다든지, 아님 정기적인 피드백을 나눌 시간을 갖는다든지 해야겠다.

안 그러면 내가 견디기가 너무 힘들다..! 내가 너무 힘들고 내가 사수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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