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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지 Jul 31. 2021

<오펀 블랙> 가족이 뭔데?

정상 가족 개념 비틀기

※ 스포일러 경고

<오펀 블랙> <스위트 매그놀리아> <리틀 파이어스 에브리웨어> <이레귤러스> <스위트 투스>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오펀 블랙>은 주인공 세라 매닝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물, 베스 차일즈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 뒤로도 역시 똑같이 생긴 앨리슨, 코지마, 헬레나, 레이철, 토니, 크리스털, MK 등이 나타난다. 이들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클론, 즉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비슷한 시기에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복제 인간이다. 이 모든 역할을 배우 타티아나 마슬라니가 홀로 연기하는 <오펀 블랙>은 이들 모두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은 험난하고 복잡하며 더러는 지루한 구석도 있지만, 이 여정 속에 가족의 개념을 다양하게 뒤틀고 확대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시도가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필릭스무해한 게이


먼저 세라 집안의 가계도를 살펴보자. 세라는 약 20년 전 쇼본 새들러(이른바 ‘에스 여사’)가 입양한 가족이다. 위탁모 쇼본에겐 수양딸 세라 말고도 수양아들 필릭스가 있다. 생물학적 토대가 없는 가족이라 편의상 위탁모, 수양딸, 수양아들 같은 한국식 표현을 쓰자니 이들 사이에 거리가 느껴지는데, 북미 유럽인이 뒤섞인 이 작품에서 이들은 서로를 적당히 사랑하고 챙기고 때로는 지긋지긋하게 느끼는 평범한 가족이다. 나아가 작품이 전개되면서 하나둘씩 나타나는 세라 클론의 일부도 이들에게 유사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된다. 세라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앨리슨, 코지마, 헬레나 등을 자매로 인식하고 챙긴다. 세라의 남동생 필릭스도 이 관계의 핵심적인 일원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누나라는 한국적 표현을 쓰기가 좀 부자연스럽긴 한데, 어쨌든 필릭스도 그 누나들을 친구와 가족 사이의 중요한 인연으로 대한다.


세라 집안의 또 다른 특징은 콩가루 가족이라고 말하기엔 꽤 화목한 편이어도 가족 구성원이 저마다 크게든 작게든 사회 윤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점이다. 세라는 자잘한 절도 전과가 좀 있다. 쇼본은 총기류를 제대로 다룰 줄 알고 사람을 죽여본 적 있으며 방화에 능하다. 필릭스의 직업은 화가인데, 그에게 전위적인 작품 활동보다 더 돈이 되는 비즈니스는 따로 있다. 그는 약물 거래와 성매매로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그의 집에 여러 남자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다녀가면서 신고가 접수된 모양인데, 필릭스는 연애는 안 해도 섹스할 기회는 많은 게이다. 성판매라는 그의 경제 활동은 같은 일을 생계로 하는 여성의 경우와 다르게 비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걸로 욕구도 채우고 돈도 버는 그는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뭘 이런 걸 단속하느냐는 듯 여유롭게 냉소하고, 가족도 그의 경제 활동을 훈계나 수치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쇼본은 그를 집에 들였을 때부터, 즉 꼬마 시절부터 그가 게이라는 걸 알았다고 다정하게 말한다.



필릭스는 클럽에 갈 땐 아이라인을 부각하는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노출이 과한 의상을 착용한다. 주요 노출 부위는 엉덩이다. 집에 있을 땐 딱 작업용 앞치마만 걸치고 그림을 그리는 날이 많은데 이때도 카메라는 그의 잘 관리된 엉덩이로 간다. 이처럼 ‘코믹 섹시’로 묘사되는 그가 앨리슨의 아이들을 봐준 날이 있었다. 그는 게임 진행자가 되어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여자아이에게 남자로, 남자아이에게 여자로 변장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적극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하지만, 게임의 진행자인 필릭스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책임과 보람을 느끼는 다정한 어른의 표정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모르는 존재는 아니지만, 미디어 속 전형적인 게이처럼, 혹은 역할극의 ‘도미넌트’처럼 도도하고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변장 지시를 내리는 게 그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방식이다. <오펀 블랙>의 연출은 전반적으로 무겁고 진지한 편인데 필릭스는 여기에 조미료를 치는 몇 안 되는 캐릭터다. 이른바 ‘소수자 쿼터’를 추구하는 여느 서양 극에서 자주 그러는 것처럼 그는 끼를 잘 부리고 적당히 야하며 새침하고 당당하게 그려져 웃음을 얻어내는 퀴어 남성이다. 


뿐만 아니라 필릭스는 헬레나, 앨리스, 코지마 등 세라의 클론 자매들과 ‘자매처럼’ 지낸다. 그들이 곤경에 처할 때 달려가서 돕고, 그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날이면 따뜻하게 위로할 줄 안다. 통제 불능인 헬레나와 교감하는 방법도 가장 먼저 터득했고(밥을 먹이는 것이다), 레즈비언인 코지마와 대화를 할 때 유일하게 그에게는 섹스 농담이 허용된다. 필릭스와 여러 여성으로 구성된 이 관계는 가족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섹스 앤 더 시티> 이후 주목하기 시작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의 이상적인 우정에 가깝다. 이 관계를 연구한 한 논문의 제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이득은 있지만 섹스는 없는 친구Friends with Benefits, but without the Sex”다. ‘프렌드 위드 베네핏’이란 사실상 섹스 파트너, 즉 친구인데 섹스라는 득을 누릴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이성애자 남녀 사이에 우정이란 불가능하다는 통념이 반영된 표현이다. 그러나 이때 남성이 게이라면 그들 관계는 다른 이득, 즉 섹스 대신 살가운 우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인데, 해당 논문이 참고해 거론한 여러 선행 연구 결과를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게이 남성은 여성을 외모에 관계없이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 이성애자 여성은 이성애자 남성 친구와 있을 때와 달리 게이 남성 친구와 있을 때, 자신의 섹슈얼리티 대신 자신의 성격에 대한 가치를 느낀다. 따라서 이성애자 여성은 게이 남성과 상호작용을 할 때 더 솔직해지고 더 안정된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 이러한 관계 연구 대부분은 이성애자 여성 관점에 주목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몇 안 되는 게이 남성의 관점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도출된다. 게이 남성은 이성애자 여성과의 우정을 ‘의미 있다’ ‘깊다’는 표현으로 설명하는 반면 다른 게이 남성과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얕다’ ‘피상적이다’ 같은 표현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 이성애자 남성은 이성애자 여성이 친근하게 행동하거나 말할 때 이를 성적 관심으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일방적인 성적 관심에 의해 오염될 수 있고, 한편 이성애자 여성들 사이의 관계는 ‘성내 경쟁’으로 오염될 수 있다. 이성애자 여성은 같은 여성 친구로부터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서로의 배우자 확보를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위의 내용이 정교한 실험을 통한 학문적 결론 도출이라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탐구의 기원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험 설계에 있어 연구자의 무의식적 편견이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과학으로 입증되는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관계로서 정립되는 사회적인 존재이기도 하기에, 이렇게 성별화된 결론을 야기한 과정을 이해하려면 더불어 사는 인간의 성별을 구분하고 강화하는 규범이나 통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이성애자 여성과 게이 남성 사이에서 편안하고 안전한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면 그들 사이에는 성적 위협과 그에 따른 지배 논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통념 때문일 것이다. 이를 뒤집으면 이성애자 남녀 관계는 섹스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이 최종 목표일 경우 성적 가해와 피해라는 통제 관계로 악화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게이 남성과 헤테로 여성 사이에는 성적 위협 요인이 없어 관계가 발전할수록 우정이라는 좋은 것만 남는다는 것인데, 그러나 이 관계가 과대평가된 것이 아닌지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우정을 미디어가 묘사할 땐 남자 측의 호들갑스러운 맞장구와 직설적인 섹스 토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우정은 공감을 보장하고 있는 데다 웃기고 시원스럽기까지 하니 현실의 반영이라 해도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성애자 여성이 ‘자랑할 만한’ 게이 친구를 만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커밍아웃이 항상 순조로운 일이지는 않고, 젠더 담론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인연을 만났다 해도 미디어의 미화와 달리 쿨하지 않으며 안 웃긴 게이 친구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필릭스 같은 성소수자를 묘사하는 관행이 항상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호들갑스러운 게이를 (보편적으로 조연으로) 활용할수록 성소수자 사회의 다양성이 묻힌다. 게이의 어떠한 특징이 자주 과잉 대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애자 여성과 잘 지내는 화끈한 게이 친구’는 기대 수요가 있어 반복되는 캐릭터 도식이다. 이성애자 남성에게도 이성애자 여성과 형성하는 순수한 우정에 대한 갈망이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안전과 그리 밀접해 보이지는 않는다. 결국 필릭스와 클론 자매들의 관계망은 약자들 사이의 연대망에 가깝다. 이 관계는 이성애자 여성 관점에서 내 마음을 잘 알고 나를 해치지 않을, 성애 없이 유쾌한 이성 친구를 곁에 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한편 필릭스는 세라의 클론 형제 토니와도 교감을 한다. 세라가 시스젠더 여성이라면 토니는 트랜스젠더 남성, 이른바 FTM(Female to Male)이다. 태어났을 때 지정된 성별은 여성이고, 스스로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은 남성이고, 성 지향성은 특정되지 않는다. 토니는 필릭스를 부드럽게 제압해 키스를 시도한다. 필릭스는 처음엔 약간 놀란 채로 수용했다가 이어지는 키스는 거부하는데, 토니는 이 거부를 받아들이고는 필릭스에게 누나랑 키스했다며(“sister kisser”) 놀린다. 필릭스는 누나(세라)랑 똑같이 생긴 사람과 우발적으로 성애적인 관계를 맺게(=당하게) 된 셈인데, 애초에 필릭스는 누나와 혈연관계가 아니고 토니는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기에 여태 함께 살아온 가족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것이 윤리를 거스르는 행위인지 아닌지 따지기 어렵다. 그는 남자와 키스했는가, 누나와 키스했는가? 필릭스는 혼란스럽고 그걸 보는 우리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토니는 혼자 태연하고 여유롭다. 그는 규범화된 남성성을 수행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게이를 유혹하고 놀릴 수 있는, 젠더 피라미드 최상단에 있는 남성으로 묘사된다.      


앨리슨사커 맘


<오펀 블랙>이 가장 자랑할 만한 연출 요소는 주연 배우 타티아나 마슬라니의 연기 스펙트럼이다. 그는 주인공 세라는 물론 토니라는 형제를 포함해 최소 일곱 명의 클론 캐릭터를 연기한다. 세라는 어린 시절을 런던에서 보냈고 베스는 뉴욕 경찰이었으며 그 밖의 클론은 미국 기타 지역 및 북유럽, 동유럽 등지에서 태어났다. 이들은 유전자가 같아도 그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기에 성격과 말투가 다르고 경제력과 지적 수준, 관심사, 젠더 등 삶의 스타일도 다르다. 캐나다인인 이 배우는 캐릭터별로 다른 억양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각각 다른 행동 습관과 표정을 구사한다. 이들 가운데 꽤 비중이 큰 캐릭터인 앨리슨에 주목하기로 하자. 



앨리슨은 클론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건 앨리슨에게 교외에서 이룬 중산층 전업주부의 완벽한 삶을 무너뜨리는 끔찍한 말이다. 남편은 좀 멍청하고 아이들은 어린데,  앨리슨은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는 가정 관리자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일을 했다면 배우자보다 훨씬 잘했을 법한 똑똑하고 꼼꼼한 성격이고,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꽤 많이 낙담했지만 두 아이를 입양해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유난스러운 양육자로 그려진다. 그런 앨리슨은 결혼한 뒤에도 성을 바꾸지 않았고 그 성을 아이들도 쓴다(반대로 결혼 후 아내 가족의 성을 따른 남편은 지역 사회의 남자들에게 조롱의 대상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성 역할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고루한 시각이다). 그런 앨리슨에겐 더 엄격한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에게는 띨띨한 사위가 탐탁지 않음은 물론이고 결혼으로 무너진 딸의 커리어도 실망스럽다. 앨리슨은 더 완벽한 딸을 기대했던 어머니가 유전자 거래로 얻은 가족이다.


그와 달리 매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왔던 세라와 필릭스 남매는 앨리슨이 자신들과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보고는 ‘사커맘’이라고 쑥덕거린다. 사커맘이란 아이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벤치에 앉아 있는 엄마, 즉 양육에 열정적인 전업주부를 말한다. 이 표현은 양육의 주 책임자가 여성이고, 자녀의 생활과 교육을 집요하게 관리하는 성별 또한 여성이며,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런 여성은 아이의 교육자와도 가깝다. 일례로 <스위트 매그놀리아>에서 아이의 프로 야구 리그 입단 준비를 진지하게 지원하는 조안나는 체육 교사와 사랑에 빠진다. 아이의 성적과 심리 상태, 진로 이슈를 이혼한 배우자보다 깊숙하게 논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이 연애에 개연성이 생긴 것인데, 반대로 교육 의식 철저한 아이 아빠와 여자 체육 선생님의 로맨스는 그만큼 쉽게 설계되지 않는다. 사커맘은 있어도 사커대디는 없으며, 축구와 야구 등 스포츠를 가르치는 사람은 대체로 남성으로 그려진다. 사커맘은 체육 활동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존재가 여성임을 가리킨다.



이렇듯 사커맘은 편견과 혐오가 내재된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정작 앨리슨은 그런 평판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세라를 입양한 쇼본이 그랬던 것처럼 앨리슨에게 아이의 무탈한 성장과 안전만큼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그 두 아이의 피부색은 앨리슨과 같지 않은데, <오펀 블랙>에 이 사실에 대해 불필요한 말을 보태는 인간은 없다. 비슷한 가족을 그리는 작품이 꽤 많다. <리틀 파이어스 에브리웨어>의 백인 난임 부부는 동양인 아이를 입양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법정에서 싸운다. 그 유명한 <셜록>을 비튼 시대극 <이레귤러스>의 주인공은 아시안 여성이고 그의 어머니는 백인인데, 그들이 어떻게 가족이 되었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보여주지 않고, 이들이 혈연관계인지 아닌지를 엄중하게 따지지 않으며 그저 둘 사이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만을 묘사한다.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한 소년>에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혼란을 느끼는 거스에게 또 다른 입양아인 베어가 말한다. “네가 입양아라는 건 네가 얻은 가족이 생물학적 가족이랑 똑같다는 뜻이야.” 이 대사가 인상적인 건 ‘생물학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같은, 차별의 전제가 될 수 있는 한정의 조건을 달지 않고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생물학적 출산과 비 생물학적 입양이라는 두 가지 배경은 서류상으로 구분될 특징일지언정 가정이라는 사회 안에서는 달라서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펀 블랙>은 유전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각자의 삶을 살던 성인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생물학적인 문제이니 혈연만큼 이를 설명하기 편한 조건이 없을 것인데, <오펀 블랙>은 친족 관계에 대한 맹신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오히려 그 관념에 대해 계속 의문을 던지는 쪽이다. 세라와 클론들은 뒤늦게 찾은 가족으로서 자매애를 나누는 관계고, 작품은 시즌을 거듭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이 서로를 구하는 사건을 전개하면서 이 유대가 얼마나 뜨겁고 아름다우며 공고한지를 보여준다. 서로를 지키려는 세라의 클론 대부분은 불임이다. 세라만이 유일하게 출산했지만 세라는 양육에 충실한 어른이 되지 못했고,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인물은 출산이 아니라 입양을 결정한 쇼본과 앨리슨이다. 이러한 역할 행위는 가족이 과연 무엇으로 구성되는가를 돌아보는 본질적인 질문이 되기도 한다. 그건 자연이 아니라 선택으로도 이루어나가는 관계다. 부부를 무촌이라 말하듯 애초에 결혼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생물학적 바운더리 바깥에서 가족을 설계해 사랑과 책임을 실천할 수 있다. 가족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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