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마녀 시점
나는 누구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의 눈에 비친 나는 얼마나 다를까? 어떤 모습이 진실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다만 나이가 들고 혼자 일하고 혼자 살아온 기간이 길어지면서 특이점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만약 가정을 이루었다면 배우자 혹은 다른 가족들에게 영향을 받고, 사회생활을 오래해도 직업 자체 혹은 직장 내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모든 걸 혼자 했으므로 소위 '지멋대로'가 몸에 배인 거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아주 가끔 만나는 데다 모든 판단은 주관적이고, 그들의 시선이 정확하다고 해도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방에 따라 내 행동도 달라지므로 사람마다 느끼는 '나'가 다를 확률이 거의 99.%이다. 그래도 인생 후반전을 좀 더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자기객관화 과정이 필요하기에 부족하나마 한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기본 성격
천성적으로 극강의 'I' 성향이다. 버스 옆자리의 타인과 불쑥 인사를 건네며 정보를 교환하는 아줌마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지루한 거 잘 버틴다.
경쟁이나 스릴을 싫어해서 피한다.
얼굴만 보면 엄청 순하다고 착각하지만 묘한 반항 기질이 있어서 누르면 폭발한다.
자타공인 독종이고 냉정한 면이 많다.
어느 정도 선만 되면 거기서 딱 만족하는 성격이라 속편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발전이 없다.
음식
원래 아기 이유식만큼 순한 걸 좋아해서, 음식을 할 때 소금이나 설탕이나 식용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쪄서 먹는다.
혀가 즐거운 음식보다 먹어도 속이 편한 음식이 좋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먹거나 해독음식을 먹기 보다는 몸에 무리가 안가는 음식을 선호한다.
매운 건 아예 못먹는다. 먹으면 입안이 너무 아프다.
디저트 종류를 좋아해서 정말 자제해야한다. 살찌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어릴 때는 과일킬러였고 면 종류를 좋아했는데, 이제 과일은 사과 혹은 귤, 채소는 애호박이나 무를 쪄먹는 정도가 맞고, 안타깝게도 면은 소화를 전혀 못시킨다. 밀가루는 오직 발효시킨 단순한 빵만 가능하다. 너무 아쉽다. 난 완전 빵순이인데!
오픈런 혹은 줄서서 기다렸다 먹기, 배달음식 등등은 단 한번도 먹은 적이 없다.
패션
옷이나 가방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무거운 건 못견디는데, 몇년 전부터 말라깽이가 되면서 무거운 게 더욱 싫어졌다. 나이탓도 있겠지.
고급 옷이나 핸드백은 사지 않는다. 아무래도 비싼 물건들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데 물건을 모시면서 살고 싶지 않다.
발에 살이 전혀 없고 두께가 얇은 편이라 언제나 두꺼운 양말 신고 운동화 혹은 트랙킹화를 주로 신는다. 기껏해야 단화 정도 신을 뿐, 구두는 30대부터 포기했다.
사는 곳
나이도 들어가는데다 뚜벅이여서 교통시설과 편의시설이 있어야 한다.
도로 넓은 신도시보다 걸어다니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고층은 이상하게 고립된 기분이 든다. 나중에 아파트에 살더라도 채광만 어느 정도 확보되면 저층에서 살 것 같다.
'너 어디 사니?'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인간관계
인간관계라고 할 것도 없다. 사주에 외로움이 있다더만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싱글들은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난 그런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 번역쟁이 30년이라 일도 혼자 했다. 원래 수줍음이 엄청 많은 성격이라서 혼자하는 일을 찾았을 수도 있다.
돈 쓰는 법
나를 즐겁게 하는 것보다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일을 없애는데 돈을 쓴다.
내 인생 마지막 장소
누구나 원하는 바이지만, 최소한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므로 나이가 들어서 반드시 의료시설 빵빵한 장소에서 살 생각은 없다. 의료적 도움을 적당히 받고 대충대충 세상에게 인사하고 떠나야지 싶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침대에서 생활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늙으면 생각이 바뀐다고 하는데, 글쎄 내가 독종기질이 좀 많은 편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내가 조금 보이는 것 같다.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고, 변화의 여지는 인정 해야하고, 그래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단점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고치면 좋긴 하겠으나, 타고난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관점을 바꾸면 조금 달라진다고 하며,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