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마녀 시점
오랫동안 살던 지역을 떠나 한번도 살아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방문한 적도 없는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다음, 나 홀로 준비하고 이사하고 정리했다. 석달 후, 다시 한번 대청소 겸 물건 정리를 하다보니 그때 끄적거렸던 메모들이 나왔다. 엥? 아직 안버렸네? 그냥 버릴까? 하다가 이것도 추억인데 싶어서 옮겨 적어본다. 다시 읽어보니 조금 오글거리는군! 푸하하
본격적인 이사 시작이다. 청소하는 날이 되자 이사를 실감한다. 아침부터 엄마 아빠의 일을 처리하느라 살짝 분주했지만 무사히 마치고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거리의 새 서식지에 도착했다. 시간이 조금 남기에 바로 옆 파리바게뜨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먹는 중이다. 나름 노트북이나 패드를 사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고 한가하며 직원도 친절하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여기에 자주 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셨지만 빵 + 물 조합도 괜찮을 듯!
이곳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도 모른다. 스무 살 이후 줄곧 강남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의 예상처럼, 강북에서도 한참을 올라온 이곳에서 일 년도 못버티고 도망가게 될지 혹은 처음에 희망한대로 모든 인프라가 빵빵하게 갖춰진 강남보다는 불편하긴 하겠지만, 넓찍함을 즐기며 더 좋아하게 될 지는 일단 살아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사실도 몇 가지 있다.
그동안 돌아다녔던 지역과 멀어질 건 분명하다. 말하자면 현재의 서식지에서는 지하철 신분당선과 2호선을 주로 이용하거나 470 / 741 / 420 버스를 타고 광화문이나 안국역, 경복궁역, 명동, 남산, 서촌 및 북촌 일대를 돌아다녔다면 이제는 그쪽으로 가는 교통수단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서울의 북동쪽 지역을 탐방하게 될 것 같다.
사람은 익숙한 환경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기에, 거길 벗어나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고 느낀다. 최고급 호텔에 가도 처음에는 우와~ 하겠지만 결국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냈다. 법륜 스님 말씀대로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을 탁! 내면 다 해낼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견뎌내야만 할 힘든 상황은 없으므로 그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이번 변화에 잘 적응한다면 앞으로도 무엇이 바뀌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해결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거고, 스스로의 속박에서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거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이사집 업체에서 짐을 싸는 동안 나가 있으라고 해서 길 건너 빵집으로 쫓겨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른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말걸, 완전 커다란 컵으로 가득 마셨기에 더 이상의 카페인은 안되고 점심을 먹을 시간도 아니어서 빵도 먹을 수 없다. 닐씨는 춥지만 할 수 없이 내가 좋아하는 커피 아이스크림을 먹는 중이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27분, 언제나 그랬듯 이곳은 출근 전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 중인 직장인들로 분주하다. 이제 이런 풍경도 당분간 혹은 영원히 안녕이겠지.
기분이 조금 애매하긴 해. 좁고 채광은 엉망이지만 편리한 곳에서 오랜기간 살았다. 즉 대중교통 엄청 좋고, 노브랜드와 다이소, 마트가 있어서 생필품 사기에 좋고 헬스장 가성비는 전국 최고 수준이니까. 하지만 상업지구여서 소음이나 채광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 없고 공기질는 완전 최악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처음에 지인들은 남들이 모두 살고 싶다는 강남에서 제 발로 나갈 뿐 아니라 강북 저 멀리의 오래된 소형 아파트로 이사하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엄마는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고 타박하면서 알아보다가 결국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쉽게 결정한 건 아니다. 이사는 가야하는데 그렇다고 남들 눈에도 번듯한 집으로 가려면 금전적인 문제가 생긴다. 물론 조금 무리하면 가능하지만 이제부터는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므로 돈 문제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서식지를 정했다.
거의 삼년을 별러서 저지른 짓이다. 그래도 어제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이사간 후에도 두어달 정도는 힘들거라고 예상한다. 실제로 살아봐야 내가 좋아할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혼자 살아온 기간은 길지만 이번만큼 '이사다운 이사'를 한 적은 없는 것 같고, 이번에 적응을 잘 하면 전국 어딜가도 적응 가능할 것 같다. 시간이 알려주겠지! Time will tell!
한마디로 잘 살고 있다. 비록 오래된 소형 구축아파트이지만 채광이 좋고 베란다가 있어서 좋고, 주변에 밥먹고 나가 산책할 공원도 많다. 바로 옆에 상당히 규모가 큰 다이소가 있고 대형 마트도 여러 곳이라서 생필품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위쪽으로 약 10분쯤 걸어가면 정말 별개 다 있다. 대중교통의 경우, 전체적으로 볼 때 강남대로보다는 좋지 않지만 지하철은 도보 2-3분 컷이므로 그럭저럭 여기저기 다니는데 큰 불편은 없다. 어제는 맘에 드는 빵집도 찾았다. 호박빵과 슈크림빵이 완전 내 취향 저격이다. 와~!
어라? 여기 진짜 괜찮아! 아예 이 지역에 눌러붙어버릴까 싶을 정도인데, 사람과 집과 돈은 쫓아다녀봐야 소용없고, 지가 와서 딱 붙어줘야한다는 말을 늘 실감하므로 앞으로의 전개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게 될 거다. 의식주 가운데 다른 복은 없어도 주(주거지) 복은 좀 있는 거 같으므로 그냥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시간이 더 흘러가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