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마녀 시점
우리 엄마는 소위 '열심히' 살아온 전형적인 한국의 엄마이고 진정 튼튼한 체력을 타고난 사람이다. 나를 보고 엄마를 상상하면 100% 틀릴 정도로 몸도 마음도 성격도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체격 자체는 비교불능이며, 엄마는 먹는 것과 입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반면, 마녀 딸은 먹는 것과 입는 것만 빼고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장점
자잘한 정이 많다
화를 쉽게 내긴 하지만 뒤 끝이 없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걸 좋아한다
체력이 정말 좋다
단점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마음대로 조합해서 믿는다
먹는 것 조절에는 언제나 패배한다
학교 성적만 좋으면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는다
변화를 극도로 싫어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미적 감각은 거의 없고 정리를 못한다
엄마의 단점이라고 쓰긴 했지만 특별한 게 아니라 한국 80대 중반의 평범한 엄마들과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약간 심한 부분이 있다면 유난히 변화를 싫어해서 아빠와는 성격이 맞았을지 몰라도 자식들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했다. 대학 때 MT 한번 가려면 허락받기가 너무 힘들었고, 저녁 9시를 넘겨서 귀가하면 난리가 났고, 지금도 나 혼자 여행가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함에도, 더 이상 나를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조금 나아졌다. 만약 엄마가 변화를 그토록 싫어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엄마 스스로 훨씬 더 재미있게 살았을텐데 그 점이 진심으로 안타깝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엄마와 가장 커다란 애증 관계를 가진 구성원은 내가 아닌, 엄마와 기본적 성격은 비슷할 뿐 아니라 에너지가 더 넘치고 활동적인 언니여서, 내가 기억하는 한 두 사람은 언제나 싸웠고, 언니는 그런 우리집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결혼을 서둘렀다. 심지어 혼인신고를 할 때 우리집 호적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삭제했을 정도였다(언니가 결혼신고를 하던 날 내게 했던 말이다). 그 당시 결혼을 하면 남편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데 그 때 친정 호적을 유지할 지를 결정한다고 들었다.
나와의 관계는 훨씬 부드러운 편이었다. 내가 워낙 작고 약골이라 싸울 상대이기는 커녕 보호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잔병치레가 심해서 흙장난을 하며 놀다 오면 한밤중에 열이 오르고 유행하는 감기는 모두 걸리는 바람에 한밤중에 병원으로 업고 뛰는 일도 자주 있었다. 따라서 영양가 많거나 맛있는 게 생기면 나부터 챙겼으므로 언니의 관점에서는 내가 상당히 얄미웠을 것 같다. 이런 점은 같이 늙어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여전히 보살펴야할 막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늘상 좋은 건 아니어서, 엄마는 내가 하는 일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그저 곁다리로, 심심해서, 할 일이 없으니까 하는 거 정도로 생각한다. 엄마들이여, 자신의 책임감이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지 한 번쯤 들여다보길!
이제 80대 후반으로 접어든 엄마는 아직 건강하지만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좋은 체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언제나 체력의 한계까지 가버린다. 얼마 전까지도 명절이나 해외에서 증손주들이 올 때마다 한 상 가득 차려내곤 했다. 조금이라도 싸고 좋은 재료를 사려고 그 추운 날씨에 카트를 끌고 가서 여러 번 실어 나르고 몇날 며칠을 준비해야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그 음식이 마련될 때까지의 과정을 잘 몰랐다. 심지어 언니조차도 그거라도 안하면 엄마가 심심하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속상해서 거의 싸우면서 말렸으나 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데까지 하겠다고 우겼다. 알아야할 건,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는 의미는 몸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하겠다는 거고, 나이가 들면 회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하지 않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엄마는 지금도 바쁘다. 삼식이 아빠의 세 끼니를 챙기고, 아파트 노인정에서 요가수업을 듣고, 최소 일주일에 서너 번은 헬스장에 간다. 도대체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내는지, 만약 나도 절대 못할 분량의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언제까지 그런 건강이 지속될 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조심해서 가능한 오랜 기간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게 되길 바랄 뿐이다.
한가지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엄마! 뭔가 실수하고 틀렸다고 그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거야. 부모도 사람이니 틀릴 수 있어. 신념과 주관은 아집과 같은 말이더라고. 그리고 만약 엄마가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우리 가족 말고 좀 더 엄마에게 잘해주는 남편과 자식들을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