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마녀 시점
완전히 주관적인 나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우리 아빠를 짧게 표현하자면 '성격은 정말 이상하지만 유순한' 사람으로, 신기하다못해 세상에 유일무이 진귀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당연히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장점
평생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과거의 아버지들이 거의 그랬듯, 삼십 삼 년을 한 곳에서 묵묵히 근무한 후 정년퇴직 했다
숙직 당번일 때만 제외하고는 외박 한번 없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왠만해서는 표출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는 자잘한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엄마에게 화를 내거나 싸운 적이 없다.
단점
사회성은 없다 못해 마이너스 수준이다
약골이라는 이유로 평생 자신에게 집중해서 살았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1도 없고 지금도 그렇다
아빠의 모든 물건은 만질 수 없는 성역이었다
화는 안내지만 젊은 시절에는 정말 자잘한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다
외출을 비롯한 모든 변화를 극도로 싫어했을 뿐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못하게 막았다
그 외에도 특이사항은 여러가지이다. 새벽 네 시 기상, 7시 반 출근, 저녁 여섯 시 땡! 퇴근, 일곱 시 집에 도착, 아홉 시 취침으로 시계같은 삶을 살았다. 과거에 친구들은 아빠가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친 퇴근길에서 통닭이나 족발 등등을 사와서 먹었다고 하고, 휴일이면 무등을 태워주거나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말을 자주 했으나 우리집에서는 꿈도 못꿀 일이었다. 일곱 시 칼퇴근 아빠는 집에 오면 저녁 먹고 씻고 일찍 자고, 휴일에는 언제나 '낮잠'을 잤다. 아주 가끔 고궁이나 해수욕장에 갈 때도 약골인 아빠는 한손에 물수건, 다른 한손에는 부채를 들고 저 만치 혼자 가고, 강골인 엄마가 모든 짐을 다 든 상태에서 우리 삼남매를 챙기면서 따라갔고, 버스에 자리가 나면 아빠가 제일 먼저 앉았다. 놀러가서도 도착한 순간부터 '가자, 가자, 가자' 즉 집에 가자고 엄마를 졸라댔다.
나와의 관계는 특히 열악했는데, 그 이유는 아빠의 취미가 나를 울리는 거였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한 건, 옛날의 남자 어른들은 조그만 아이를 일부러 '울려놓고' - 특히 귀를 깨물거나 꼬집는다 - 귀여워서 그런 거라고 했다는 거다. 다른 집은 모르겠는데 우리집의 경우, 아빠와 사촌 작은아버지는 늘 나를 울렸다. 어린 시절의 일이라서 다 잊을 거라 생각한다면 정말 그건 오산이다. 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잊어버리냐고! 아이들이 재미삼아 던진 조그만 조약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어쨌든 친해지기는 커녕 가까이 갈래야 갈 수 없었기에, 아빠와 보낸 추억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가끔 사이좋은 가족이 TV에 나와서 아버지를 닮고 싶다던지, 다시 태어나도 내 아빠로 태어나줘~라는 말을 하면 그게 되려 신기했다.
지금도 아빠와의 관계가 그리 친밀한 건 아니다. 은퇴 후에 약간 친해지고 싶다는 의도를 내비치기는 했지만 서로 방법을 몰라서 그랬는지, 도저히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랬는지 이내 포기하시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속이 넓은 편은 아니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탓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대단히 살갑고 좋은 아빠인 건 아니었으나 그 힘든 시기를 살아내면서 가족 부양이라는 가장의 역할을 무사히 끝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살뜰한 살림솜씨도 많이 작용했지만 어쨌든 돈을 벌어온 사람은 아빠 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살아온 시대는 지금과 너무 달랐을 것 같다. 태어나보니 일제시대, 원래 그런 줄 알고 살다가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일본 패망 후 독립이 되고, 그 이후 한국전쟁과 4.19과 5.16를 줄줄이 싹 다 거친 세대 중 한 사람이었다. 다들 자신의 세대가 가장 힘들다고 울분을 토하고, 내가 겪은 80년대도 그리 녹녹한 건 아니었고, 현재 젊은 애들이 살아내야할 세상도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90대인 아버지 세대에 비해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거 같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울증, 번아웃 등등도 세상이 몇 번이나 무너지고 뒤바뀌는 상황과 비교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그런 환경에서 신체적으로 약골 중의 약골인데다 성격도 내성적인 아빠가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다. 물론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지금까지 젊은 시절 아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삼십 삼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때려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등등의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개인적인 면을 봐도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큰 집에 아들이 없으면 작은 집의 둘째 아들을 큰 집 호적에 올린 뒤 대를 잇게 했는데, 아빠가 바로 그 둘째 아들이었다. 그 말인 즉, 큰어머니가 엄마가 된 셈인데, 내 기억에도 호적상의 친할머니는 성격이 상당히 까칠해서 푸근하게 아이를 안아줬을 것 같지도 않고, 할아버지도 나름 영특했던 아빠에게 세살 무렵부터 붓글씨를 가르치며 상당히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 시대 남자들은 감정을 드러내면 안되는 거라는 인식이 강했던 거 같아서 아빠가 어릴 때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짐작할 수 있고, 받은 적이 없으니 주는 방법도 몰랐을 거다.
이러한 세월을 거친 뒤, 요즘 아빠의 근황을 보자면, 아흔 살에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차를 처분한 이후, 보청기를 끼고 TV를 보거나 흘러간 옛노래를 들으며 하루종일 혼자 방에서 지내신다. 여젼히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마다 배달된 신문을 읽고,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월간 조선을 읽고, 가끔씩 신문 광고에 등장하는 책을 주문해 달라고 내게 '주문'하신다. 아침은 엄마가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꺼내 홀로 식사를 하고, 점심과 저녁은 엄마와 함께 드신다. 일주일에 세 번 정기적으로 방에서 운동을 하는데, 얼마 전까지 헬스클럽에 다녔지만 이제는 기구가 너무 무겁다며 방안에서 아령과 약간의 소도구를 사용해서 운동하고 스트레칭을 하시는 것 같다.
고립되지 않은 듯 고립된 노후인 듯 같아서 이게 바람직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혼자 지내는 건 나도 마찬가지이므로 흉을 볼 생각은 없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는 젊을 때부터 걷는 걸 무진장 싫어해서 외출을 잘 안했다고 들은 반면, 나는 걷는 걸 워낙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해서 비록 나홀로이긴 해도 외출도 하고 여행도 해야한다는 것 뿐이다. 그래도 외관상으로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신 듯 하므로 그것만으로 나이든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모두 이행하시는 중이니,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 중에서 서로 닮은 구성원들의 사이는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들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엄마와 언니가 대립관계였고, 나는 가장 성격이 비슷한 아빠와 대놓고 싸운 건 아니지만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 힘들며 지금도 살갑게 지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늙어가면서 서로 기운이 빠진 건지 몰라도 감정 상의 문제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해. 좋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