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세상
징검다리 식으로 비가 오고 흐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저 돌아다니기 좋은 날씨이다. 맑고 밝고 시원한 날이 될 거라는 예보가 뜨자 머릿속에서는 행선지 고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날 밤 문제가 터졌다. 갑자기 오른발바닥 근육이 굳어버려서 발을 디디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라? 다친 것도 아닌데도 순식간에 몰려온 통증인데, 부은 게 아니니 염증은 아니고 다만 근육이 심하게 뭉친 것 같았다. 하긴 요즘 트레킹과 조깅하느라 발을 좀 못살게 굴면서도 제대로 풀어주지 않았으니, 발이 삐진 게 당연하다. 주말인데다 밤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일단 근육이완제 먹고 파스 붙이고 조물조물 달래주고, 아침이 되니 조금 풀어져서 걷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으나 멀리 가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 온 국민이 몽땅 놀러가는 기간에는 조용히 동네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지! 이번 코스는 당현천을 따라가다 중랑천을 만나는 지점부터는 중랑천 따라 걷기로 정했다. 요즘 조깅으로 뛰는 방향과 반대로 가면 중랑천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에 큰 카페가 있었다. 음료와 간단한 스넥을 팔고 있었고 가격도 무척 착한 편이었다. 거기에서 공용화장실을 이용한 후,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으나, 그렇게 되면 해를 안고 가는 게 되어 눈이 너무 부셨다. 어차피 갈 수 있는 만큼 걷다가 되돌아와야 하므로 그대로 돌아서서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래 왼쪽은 중랑천과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작은 휴식 공원이고, 오른쪽은 중랑천 옆으로 조성된 넓고 깔끔한 게이트볼 야외구장이다. 나이든 분들이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었는데 가다보면 킥보드 혹은 롤러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멀리 보이는 게 수락산 같은데,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냐, 맞을 거야, 수락산은 글자그대로 암석 벽 투성이 였으니까. 길을 따라 가다보면 야외 헬스장이 여기저기 조성되어 있었다. 낮이어서 햇살이 강했지만 아직 기온이 많이 오르지 않은데다 바람이 엄청 불어서 그런지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하늘이 맑다. 바람도 강해서 걸을 맛좋은 날이다. 운치 좋은 나무 정자도 보이고, 예쁜 꽃들도 보인다.
노란색 꽃은 언제나 옳다. 그런데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불었고, 모자가 저만큼 날아가는 바람에 허겁지겁 되찾아오기도 했다. 이 정도 세기라면 산이나 바다에서는 돌풍이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듯.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수락산역 부근까지 갔다. 원래는 거기서 지하철로 귀가하려고 했는데, 공사중이라 길을 막아놔서 그쪽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 조금 더 내려오니 나가는 길이 있길래 거기서 버스타고 돌아왔다. 오늘도 멋진 동네한바퀴, 작고 소중한 행복이 한 스푼 더해진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