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아줌마의 일기
정착을 꿈꾸던 시기, 둥지를 틀어 편리한 도구들을 갖추고 예쁘게 꾸미고 사는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정착할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집-돈-사람은 쫒아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따라와야한다는 미신같은 믿음 아래, '노마드'로 살기로 했다. 그렇다고 큰 변화가 예고된 건 아니다. 그저 지금보다 좀 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여행을 자주 가고, 책을 가까이 하고, 손글씨 연습을 하고, 외부에서도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정도이다.
그 중 책-손글씨 쓰기-그림은 한 번에 묶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시도해봤다. 지금까지는 산책을 나가면 최소 서너시간 돌아다녔고, 그 후에 커피라도 마시고 올려고 마음먹었다가도 피곤해지면 그것도 힘들어서 그냥 서식지로 복귀했던 것에 반해 조용한 카페에 먼저 가서 두 시간 반 정도 이것저것 하다가 산책을 하도록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해야지. 처음에는 근처 미술관 도서관에서 몇 번 해보니 나름 괜찮아서 이번에는 굳이(!) 서울 한복판으로 향했다. 경복궁역-안국역-광화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으로, 아무리 강남이 최고라고 외쳐도, 아무리 좋은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해도 직접 가서 보면 왕들이 이곳에서 살았던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고, 지금도 종로에 한번 살면 거길 안떠난다고 하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인터넷 검색으로 갈만한 카페를 물색했다. 경복궁 담장 건너편 넓고 편한 카페였는데, 그 부근에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모여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의 미션은 일본어 공부를 하고 그림 한장 그리기였다. 일본어 공부는 해야할 분량이 있기에 그럭저럭 할 수 있는데 그림은 조금 난감했다. 결국 눈앞에 놓인 커피잔 하나 달랑 그린 다음 그 옆에 낙서하는 걸로 마무리 했다. 그래도 한건 했어!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심하게 오글거리긴 하지만 낙서 몇 줄을 옮겨보면...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그림도 일본어 공부도 모두 제 궤도(Orbit)를 찾아갈 거 같다 ... 궤변일수도 있으나, 신기한 건 처음 시작한 이 건물의 이름이 <오르비스>이란다... 잘할 필요도 없고, 그저 꾸준하게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고 싶을 뿐이고 그저 이번에는 뭔가 결판을 내고 싶다는 거... 다시 한번 새겨보지만 2026년의 키워드는 그림+손글씨+일본어+여행!"
대단한 결심을 한건 아니다. 해내도 대단한 건 아니고 못한다고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저 지지부진하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스트레스만 받는 것 같아서 궁여지책으로 시한을 정해준 것 뿐이다.
한편, 낙서를 하다보니 어린 시절의 그림 일기가 떠올랐다. 아니, 어린애들만 그림일기를 작성하란 법은 없잖아. 어른도 할 수 있어. 아예 초등생용 그림일기장 하나 사서 장난삼아 해볼까? 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도 같이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다!
참고.
이 모든 게 가능하려면 인생에서 귀차니즘을 내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