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Oct 03. 2023

하늘공원-억새 & 메타세콰이어

뚜벅이 아줌마의 세상구경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세상구경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당분간은 계속 돌아다니며 기록을 남길 것 같다. 프리랜서 번역쟁이 30년, 느지막히 일어나 커피와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밤이 되면 일하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일이 들어오면 휴일도 휴가도 없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다, 강사생활 십수년이 겹쳐지면서 번역숙제 첨삭과 수업준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할 일이 없다고 해도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몰라서 돌아다니지 못했다. 이제 은퇴한 첫 해,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야외활동에  적합한 기온이라는 삼박자에 힘입어, 집순이의 몸에 숨어 있던 역마살이 기세등등하게 깨어났다. 이래서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날이 궂으면 그 핑계를 대고 쉬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날 정도로 피곤했지만, 어김없이 날씨가 좋단다. 어딜 가지? 그래, 이번에는 하늘공원 당첨! 재작년 무렵 한번 가본 적은 있다. 가을마다 일에 꽁꽁 묶여있던 시절이라 겨우 시간을 낸 게 하필 한여름이었다. 뙤약볕에 하늘계단을 헥헥 올라갔지만 눈앞에 펼쳐진 벌판은 텅 비어 있더라. 아항, 여긴 가을에 와야하는군! 


바로 그날이 왔다. 강남대로에서 9711을 타면 신사동~월드컵 경기장 남측 정류장까지 무정차로 간다. 버스에서 내려 진행 방향으로 가다가 두번째 건널목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면 하늘공원 입구가 나온다. 하늘공원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 - 맹꽁이 열차(완전 편하다. 성인 기준 편도 2,000원), 완만한 경사길(힘 안든다), 하늘계단(빡세다). 원래 하늘계단으로 가려고 했지만 현재 억새축제 준비 때문인지 보수공사로 막아놓아서 경사길로 갔고, 예상보다 빨리, 쉽게 공원에 도착했다. 


엄청 넓은 면적을 가득 채운 억새 사이로 원없이 걸었다. 억새밭을 배경삼아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구 반대편을 향해 쭉 걸어가면 한강이 보이고 그 둘레로 걷다 보면 여기저기 전망대가 있어서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뷰 맛집은 따로 있었다. 하늘공원 편의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정말 예뻤다. 억새밭 내부로 들어가 사진을 찍으면 대부분 그게 그 사진처럼 보이지만, 편의점 위치가 하늘공원에서 가장 높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기에도 좋았다.

한참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왔는데, 길바닥에 메타세타이어길이라는 표시를 보고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 마이 갓! 이런 곳이 있다니! 

인파로 북적이는 하늘공원과는 달리, 한적해서 사색하기 적합하고 사시사철 와도 좋을 듯 하다. 서식지에서 먼 게 흠이긴 하지만 길이 안 막히는 시간에 오면 버스타고 40-50분 이내로 올 수 있으니 멋진 산책로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게다가 버스 유리창 너머 한강뷰는 덤으로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기도 힘들다!



인생의 황금기가 오십대라는 게 맞는 말 같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넌 운이 좋아서, 걱정거리가 없으니까" 라고 말하고, 그게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운이 안따라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젊은 시절부터 많이 못버는 대신, 남들처럼 쓰고 누리면서 살지 않았고, 지금도 어디 가서 지갑 열어놓고 살지 않는다. 바닷가에 가서 편의점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아주 조그맣게 살아가고 있다. <끝>


작가의 이전글 아침고요수목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