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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an 01. 2024

2024년 일출 - 와룡공원

뚜벅이 아줌마의 세상구경

일출을 보려고 간 건 아니었다. 두어달 전 통영여행 갔을 때 이순신 공원에서 멋진 일출을 보면서 올해는 이걸루 퉁치면 된다고 생각했고, 일출은 매일 볼 수 있어서 오늘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성곽길을 걷기 위해 나갔을 뿐이었다. 강남대로에서 470번이나 741번 버스를 타고 종로 2가 정류장에서 내리고, 길 건너 종로 YMCA 앞에서 종로 02번 마을버스를 타면 성대후문/와룡공원 정류장에서 내려 진행방향으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방 도착한다.


7시 15분쯤 도착한 와룡공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서도 일출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기왕 왔는데 일출부터 본 다음 성곽길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기다렸다.  

거기서 말바위 전망대에서 더 잘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들을 따라 올라가는데, 어라, 눈이 모두 녹아 뽀송뽀송한 도심 길거리와 달리 이곳은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고 얼은 부분은 미끄러운 데다 평지보다 훨씬 추웠다. 눈이 녹은 줄 알고 스틱도 두고 왔는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고, 오늘 백악구간 성곽길은 글렀다고 직감했다. 기왕 온 김에 일출 보기 위해 전망대에서 기다리면서 보니 나무가지가 시야를 가리더라고. 차라리 아래쪽이 더 낫겠다 싶어서 다시 와룡공원 쪽으로 내려갔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아까 버스에서 내려서 와룡공원까지 걷는 길에서 일출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전망대보다 더 많이 모여있었다. 그래도 일출명소로 알려진 곳이 아니라서 인파가 어마어마한 게 아니어서 오히려 좋더라고.


계속 기다렸다. 시간상으로는 해가 뜬 게 분명한데 하늘 아래쪽에 깔린 구름에 가려서 안보였다. 반대편 달이 지는 방향에는 구름 한점 없드만...

그래도 구름과 구름 사이로 보일 것 같아서 계속 기다렸다. 오! 드디어 드디어 보인다~!!! 구름 사이로 둥그런 태양이 형광 주황색을 자랑하며 서서히 나타났다.

마치 가속이 붙은 듯 하늘로 하늘로 계속 직진!

2024년 1월 1일의 일출이다. 매일 볼 수 있는 일출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왠지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올 한해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해가 모두 뜬 다음에도 그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를 비롯해서 서울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땅따먹기를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다녀보니 그게 아니었고, 각종 시설이나 문화적인 혜택도 손에 꼽을만큼 훌륭한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갈까 하다가 걸어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걷기 시작했다. 감사원을 지나 통일부를 지나 북촌으로, 다시 안국역까지 주욱 이어지더라.

이쯤해서 결정을 해야했다. 원래 계획과는 완전히 달라졌어도 인사동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일단 서식지로 복귀하기로 했다. 예상보다 추운 날씨에 오래 서 있었더니 몸이 꽁꽁 얼어버렸고 예상보다 인사동 길이 미끄러운데다 날이 날인만큼 커피라도 마실 곳이 없어 보였다. 일단 쉬고 몸을 녹인 다음에 생각하지 모.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오늘의 교훈.

1. 세상 일은 예상과 다르고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다.

2. 눈이 오거나 온 다음의 성곽길을 걷고 싶다면 최소한 스틱은 가져가야 하고, 트레킹화가 아닌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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