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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당직? 내가 할게"

오히려 좋아

우리 부서에 신규직원이 들어왔다. 학벌도 좋은데 사기업이나 취직하지 박봉인 공직에는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깊은 속사정까지 파고들어서 이유를 알아내고싶은 마음은 조금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행히 나보다 어린 남자동생이어서 처음에 보자마자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다. 현재 우리팀에는 나랑 그 동생빼고는 전부 여자이기 때문에 편하게 터놓고 지낼 남자직원이 필요하긴 했다. 그 동생도 어찌나 싹싹하고 착하고 순수한지 나를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저것 내가 알려주는것을 일일이 메모도 했고 내가 시키는 것을 부지런하게 수행해주었다. 그 동생에게는 나름 내가 첫사수이기때문에 나의 업무 노하우나 지식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따라와주질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기대는 우수한 인서울 학벌이라는 점이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아, 이제 들어온지 한달도 안되었는데 내가 너무 많은걸 바라는 것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20일이되자 그 동생은 생애 첫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보게 되었다. 이번 1월에는 명절수당까지 포함해서 들어와서 나름 두둑하게 들어왔을 것이다. 내가 의도한건 아니였지만 그 동생은 나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는지 서브웨이 2만원 가량의 기프티콘을 보냈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동안 내가 잘 챙겨준 것에 대한 보답일 것이고 앞으로도 잘부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입장바꿔서 생각해보면 그 친구도 처음 출근을 했는데 실수하지 않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고 좋은 사수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에는 나말고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또래남자는 없어서 나에게 기대를 하고 의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첫출근을 해보았고 그런 상황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려고 노력을 했다.

그 후 1월말이 되자 2월 당직근무표가 나왔다. 우연히도 설날 당일 2월 1일 당직근무를 그 동생이 딱 걸렸다. 이것은 막내 신규라고 해서 설 당일 근무를 억지로 준 것은 아니고 본인의 전임자 근무 순번을 이어받아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뭔가 내 마음은 영 불편했다. 그래도 첫 회사의 첫 월급을 받고 난 후의 첫 명절인데 당직근무를 하는 모습은 그 누가봐도 안타깝다.


"설날 당직이라고? 내가 할게"
"에이 형,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냐, 나 당직서는거 좋아해"



진짜다. 나 당직서는거 좋아한다. 왜냐고? 당직수당도 받고 대체휴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아니라 설날 당일이라고? '오히려 좋아'. 나는 매년 명절날마다 차례를 지내러 가족들과 함께 큰집에 갔었다. 군대를 제외하고 고3때도 갔었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을때도 갔었다. 옛날과 달리 요즘 내 주위사람들얘기를 들어보면 차례를 안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분들이 돌아가시고 난후로 명절에는 간단하게 밥만 먹고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근데 우리집안의 차례를 지내는 문화는 큰아버지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굳건히 유지될 것 같다. 물론 우리의 고유의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중요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규모가 간소화 되거나 횟수가 줄어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준비하는 음식의 양을 줄이거나 설이나 추석중 한번만 차례를 지내거나 하는 방법도 있다. 무리하게 고된 노동을 통한 보여주기식의 허례의식보다는 명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보낼 수 있는게 더 좋아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은 순전한 내생각일뿐이다. 명절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 아버지는 항상 "그럼 너가 큰아버지께 말씀드려보렴" 이라는 무적(?)의 말로 나를 잠재우곤 한다. 아버지도 그렇고 나 또한 그런 이야기를 큰아버지께 한다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와도 같다. 이렇게 나는 명절이 조금 불편했다. 친척들이 싫은 것은 아니다. 만나면 그래도 오랜만에 반갑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냥 황금같은 설 휴일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설 당직은 좋다. 사무실에는 나 혼자뿐이다. 나름 우리지역의 이름있는 관광지인 우리 사무실에 민원전화도 많이 없다. 설날 당일이라 다들 차례를 지내는지 아니면 추운 겨울이라 볼 게 없어서 찾아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설날에 혼자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 밀린 업무도 조금 처리하고 잠시 잠이 오면 커피도 한잔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브런치에 글도 남길 수 있는 명절날의 당직이 나는 너무 좋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 터질 수 있기때문에 어느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하면서 오후6시까지의 근무를 이어나가야한다. 설날을 사무실에서 보내다니 너무 좋은걸? "ㅎㅅ야 고마워~ 설날에 당직서게 해줘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