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025

치바 2.

by 해피아빠

며칠째 오던 비가 그쳤지만 여전히 하늘은 회색 빛입니다.

치바의 작은 도시, 고이(五井)에 온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네요.

사실 이름도 낯선 이곳에 온 이유가 있습니다.


체크 아웃을 하고 로비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불감증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아서 인지 안타깝게도 설레는 마음은 없네요.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2015년 1월 어느 날.

터키의 셀축이라는 마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터키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일본 손님들을 모시고 온 인솔자였습니다.

서로 일로 마주칠 확률은 0%에 가까웠죠.

그런 그녀를 우연히 점심 식당에서 마주쳤고 저는 첫눈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은데 입에서 한마디도 안 나오더군요.

신기하게도 몇 년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인사말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그녀는 버스에 올랐고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지나친 인연들이 어디 그녀뿐일까요.


잠시 후 저도 식사를 마치고 손님들과 에페스라는 유적지에 갔습니다.

로마의 유적이 남아 있는 에페스 유적지는 성경의 에베소서의 수신처이기도 하지요.

이곳에 가면 설명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더불어 '우리 가이드 참 똑똑하네'라고 칭찬받기도 하는 곳이죠.

그날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유적지에 도착했을 때, 저는 설명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적지 끝에는 기념품 샵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모든 관광객들이 장시간 걸어서 유적지를 둘러보기에 다들 꼭 들려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그곳을 목표 지점으로 잡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그룹과 속도를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 보다 훨씬 빠르고 간결하게 설명을 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일본 그룹과의 거리는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팀은 7명, 제가 모시는 손님들은 30명이 넘었으니까요.


눈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두 번째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저의 사심 때문에 손님들의 귀한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습니다.(엄청나게 포장하네요.)


유적지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원형 극장입니다. 원형 극장을 배경으로 손님들 사진을 차례로 찍어 드렸습니다. 그녀를 포기하기 전까지의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면서.


그렇게 에페스 유적지를 나오려고 하던 그때 저에게 3번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일본 손님들이 기념품 샵에 들어 가 있었고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


그리고 저는 어렵게 일본어로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저의 와이프가 되었고

또 시간이 흘러

그녀와 저는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교토에서 준비해 온 오마모리를 전해주기 위해 고이에 왔습니다.

저와의 결혼 생활동안 생긴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

그녀와 저는 바다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녀와 함께 카스우라를 향해 달렸습니다.

그녀에게 가까운 온천에서 1박 하고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에미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어촌마을이었습니다.

에미식물1.jpg
에미바다.jpg
에미식물2.jpg
에미의 바다. 태평양이래요.
에미모레2.jpg
에미모레1.jpg
서퍼들이 남긴 발자국과 에미의 돌들. 누가 올려 놓은것 마냥 돌위에 걸쳐져 있는 조개 껍질.


바다를 보니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도 못하고 그녀를 병들게 만든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알코올중독에 힘들어하는 그녀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다고 했습니다.


모레밭에 찍힌 서퍼의 발자국도 파도가 스쳐 지나가면 다 사라지듯이, 우리의 상처도 자비로운 파도를 만나기를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상처도 깨끗이 치유해 줄.

배수구식불.jpg 누가 심고 가꾸지 않아도 멋지게 자라주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다 벌써 활짝 핀 벚꽃아래서 둘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서로를 미워하지 말자고, 그리고 스스로도 미워하지 말자고.

모든 것들을 손에 쥐려 하지 말자고,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