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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Sep 26. 2024

김치 친구

"벌레니? 벌레야~"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주말 오후 집에 늘어져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벌레니?” 핸드폰에서 낯익은 목소리와 초등학교 시절 나의 별명이 들려왔다.

K야?” 나도 그 목소리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너 내 번호 없지? 난 지 몰랐지?"우리는 어색할 틈도 없이 바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K 초등학교 친구다.


K는 쉬고 있다가 오봉초등학교로 단기알바를 나가게 됐고, 오봉초등학교는 내가 40년을 넘게 살았던 집 근처였다.

알바를 나가며 우리 집을 지나며 내 생각이 났고, 일을 하며 손목이 아파 동네 정형외과를 물어보려 연락을 했다 한다.

딸하나를 낳고 살아있는 K

이제 그 딸이 고3이 되어 내가 다녔던 용화여고를 다니고 있다 한다. K 역시 방학동에서 40년을 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보다 먼저 결혼한 K는 진솔하고 부지런한 친구다. 여상을 졸업하고 명동공증사무실에 취직해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다가 일찍

결혼했다.

나중에 공황장애가 생겨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꾸려 나갔다. 

나에게 공증사무실 아르바이트랑 소개팅도 시켜주었던 K. 소개팅남은 김장훈을 닮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는데 100일 반지만 하고

헤어진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K의 집에 나는 자주 놀러 갔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15분 정도 거리였다. K네 집은  방학동 도깨비시장 작은 골목 안에

있었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2층이 주인집이고, 1층에 같은 현관문의 두 집이 있고, 그중에 왼쪽 집이었다.

가끔 엄마가 계 실 때도 있었지만 우리 둘이 많이 놀았다.

깔끔한 부엌과 작은 화장실, 그리고 주방과  큰 안방. 우리는 안방에서 인형놀이고 하고 과자도 먹으며 가끔 마당에 나가기도 했다.

우리 집은 많이 추웠는데 K네 집은 아늑하고 따뜻해서 놀다가 가끔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전화 통화를 하며 나의 이사 소식을 들은 K

이사 간 집은 따뜻한지. 예전 집은 추웠잖아 하고 말해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직도 많이 자냐고 물어 그건 여전하다고 말했다.     

K는 중간중간 대화를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별명 “벌레야~”하며 나를 불렀고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중학교   뚱뚱하고 조금은 웃겼던 나의 별명은

'돼지벌레'였다.

지금은  '벌레'라는 단어가 여러 뜻으로 불리며 혐오발언으로도 쓰이지만 그때는  바야흐로 신형원 씨의 '개똥벌레'가  유행하면서 뚱뚱하고 엉뚱하고  조금은 웃긴 나의 별명이 되었고 반에서 장기자랑이나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친구들이 “돼지벌레요~"

하면서 나를 부르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 이름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가는 아찔한 기억도 있다.   


 K는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친구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시인의 말처럼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어 언제 꺼내 먹어도

잘 익어 아삭하고 시원하고 시큼하고 곰삭은

고운 빨강빛으로 이쁘게 물든 김치 같은 내 친구다.

                   



토닥 한 줄

기쁨은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찾아온다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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