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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Sep 24. 2024

지랄소녀

요즘 세상이 제정신으로 살기는...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소싯적 나는 헤어스타일을 많이 바꾸었다.

엄마가 미용실을 했었고 나 또한 변화를 좋아했다.

빨갛게 노랗게 염색도 자주 하고 나이아가라파마에서부터 막파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펌을 시도했다. 또한 한창 술 먹고 놀기 좋아하던 그 시절에는 동네에 새로 생긴 술집에 있으면 한 번은 꼭 갔다.

그래서일까?

연애 시절 남편은 나를 가끔 지랄소녀라고 불렀다.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하던데...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도서실을 다니며 놀고, 대학 다니며 또 놀고, 졸업 후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끝까지 놀았기에 다 채웠다 생각했는데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에 다시 파마를 했다.

평소 좋아하던 양동근의 폭탄머리 아프로 펌

양동근 사진을 들고 찾아간  동네 모던 헤어샾에서

디자이너분은 호불호가 많은 머리라며 살짝 망설였지만, 한 올 한 올 머리를 꼬아서 정성껏 말아 주셨다.

머리숱이 많고 두꺼운 나의 머리에 딱 맞는 헤어스타일이었다.

기다림 끝에 머리를 풀고 샴푸를 하고  거울을 본 나는 미소를  지었다.


파마를 하고 집에 오니 남편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 요즘  세상이 제정신으로 살기는 힘들어... 암... 그렇지...."

첫째 딸은 "엄마... 당분간 밖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자"라고 말했고

둘째 딸은 "처음엔 무서웠지만 자꾸 보니까 양머리 같아 엄마"라고 했다.

누가 뭐래도  난 내 머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한창때의 소년, 소녀는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  뿌염거부 반백발로 지내다, 다시 뿌염을 하고 여전히 오락 가락 하며 지낸다.

소년은 내 핸드폰에 겨자씨남편으로 저장되어 있고, 지랄 소녀는 남편 폰에 꽃사슴아내로 저장되어 있다. 내가 저장했지만...

원하는 데로 부르다 보면 그리 될 날이 올 것이니 말이다.





토닥 한 줄

삼십 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가 잠시 들러 침을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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