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출근하는 직장이 있다?

by 송대근
"오늘은 진짜 안 돼. 병원에 전화해. 내가 대신해 줄까?"



아침부터 아내의 몸이 불덩이 같습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열기가 심상치 않아요. 체온계는 39도.


저의 만류에도 아내는 마스크를 고쳐 쓰며 신발을 신었습니다. 아내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이 흐릿했지만, 손은 기계적으로 출근 가방을 챙기고 있습니다.


"간호사는 아프면 병원으로 출근해야 해. 그래야 치료도 받고 일도 하거든. 일반 직장이랑은 달라. 내가 빠지면 오늘 근무자는 죽어 나가."


아내는 농담처럼 웃었지만, 그 뒤에는 서글픈 책임감과 거부할 수 없는 시스템의 압박이 서려있습니다.


몸뚱이를 끌고 병원으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

아프면 쉬고 병원을 가라는 상식이, 아프니까 출근해서 환자를 보라는 비상식으로 변모하는 그곳으로 아내는 오늘도 발음을 옮깁니다.




스테이션에 들어서자마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날카로운 공기였다. 15년 차 베테랑 (*)차지 선생님은 휑한 눈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쌤, 인사 똑바로 하라고 얘기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목소리가 왜 그래?"

며칠 전 간호과장이 우리 병동에 시시건건 트집 잡고 헤집은 바람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원 내에서 인사를 잘하라나 뭐라나.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다.


"독감이에요."

"독감? 하필 오늘 인력도 없는데..."


걱정보다는 원망 섞인 한숨이 먼저 돌아왔다. 차지 선생님도 안다. 내가 빠지면 오늘 입사한 지 2주 된 신규 선생님과 단둘이서 이 난장판을 쳐내야 한다는 걸.


처치실로 들어가 익숙하게 자신의 팔에 정맥 주사를 놓는다. 남들은 주사를 맞을 때 시선을 돌리지만, 간호사인 우리들은 그럴 수 없다. 차가운 수액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자 묵직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쉴 틈은 없다. 수액을 full drop 시키고 한 손으로는 인계판을 살펴본 뒤 스테이션을 나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신규 선생님인 김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선생님! 어떡해요! 임말자 할머니 라인을 뽑아버렸는데, 피가 튀고 난동 부려서...!"

"지혈했어요?"

"네?"


더 들어볼 것도 없다. 깨질 듯한 두통을 누르며 달렸다. 현장은 가관. 이미 피가 침구를 적시고 있었다. 환자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신규는 어쩔 줄 몰라하며 구석에 서 있었다. 어지럼을 견디며 환자를 안심시키고 빠르게 라인을 정리했다.


"김쌤, 정신 좀 차려요. 지금 이것만 정리하고 바로 소독할 환자 드레싱 준비해요."


하지만 신규 선생님의 실수는 시작에 불과했다.

10분 뒤, 약국에서 전화가 왔다. 308호 송응순에게 가야 할 항생제가 다른 환자에게 처방되었다는 것이다. 신규쌤이 주치의에게 환자 이름을 잘못 전해 처방받 결과였. 만약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았다면 의료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선생님, 제가... 제가 너무 긴장해서..."

울먹이는 신규를 달랠 기운조차 없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설상가상으로 스테이션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렸다. 원무과였다.


"301호로 지금 응급실 통해서 환자 한 명 올라갑니다. pneumonia case에요."

메인차지 선생님은 수화기를 붙잡고 항의했다.

"지금 이 시간에 무슨 (*)환을 받아요? 점심도 먹어야 하고 병동 선생님들 상태도 안 좋은데..."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만능해결의 문장을 외웠다.

"주치의 결정입니다. 곧 올라가요."


병원은 경영 효율을 이유로 예비 인력을 두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남은 이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공백을 메우는 구조.


'아프다'는 환자에게만 허용되는 단어일 뿐, 간호사에게는 박제되어 어딘가에 처박혀버린 구호다.

"일터가 병원이니 아프면 출근해서 치료받고 일하면 되잖아" 라는 지독한 아이러니.


결국 응급실에서 환자가 올라왔다. 휠체어에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환자 앞, 나는 정작 자신의 기침은 마스크 뒤에서 꽉 깨물어 삼켰다. 나도 숨이 가쁜데, 환자에게는 "깊고 천천히 숨 들이마시세요."라고 말한다.


옆에서는 신규쌤이 환자에게 간호정보조사지(간정조)를 들고 가 거꾸로 보이게 들고 설명하다 보호자에게 "이 사람 초보예요? 왜 이렇게 버벅거려!"라는 핀잔을 듣고 있었다. 결국 신규쌤은 다시 뒤로 밀려난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식은땀이 마스크 안으로 흘러내려 턱 끝에 맺혔다. 수액은 맞았지만, 몸의 회복 속도는 업무하중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구, 간호사 언니도 몸조리 잘해. 얼굴이 흙빛이야."

한 환자가 그런 나를 보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이 기괴한 풍경 , 나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돌아온 아내의 손등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스스로 놓은 주사 자국 위에, 제대로 지혈도 못한 채 다시 뛰어다닌 흔적이려나요.


"오늘 어땠어?"

아내의 손을 잡자,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응... 오늘 신규가 사고 친 거 수습하고, 신환 받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 웃기지? 병원이 직장이라 치료비는 안 들더라. 수액 맞으면서 일하니까 좀 버틸 만했어."


아내는 농담처럼 말하며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그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곁에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아프면 쉰다는 당연한 명제가 통하지 않는 곳. 가장 건강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아픈 채로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곳. 병원이라는 거탑을 세우기 위해 누군가의 통증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묵살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일도 아내는 수액을 맞고 그 거대한 아이러니로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간호사라는 이름의 숭고함 뒤에 감춰진, 아파도 아플 수 없는 노동자의 고단함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차지 : Charge. 병동에서 인수인계를 맡아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오더를 받아 치료, 관리 계획을 실행하는 간호사.
(*)신환 : 신규환자의 줄임말. 신규환자 입원 시 환자상태파악, 입원안내, 지참약 및 퇴원약확인, 보호자에게 환자물품설명, 처방받기 등 의료진 업무량이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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