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
설 연휴를 맞아 동료들과 수영을 즐겼다.
수영이 끝난 뒤, 시원한 맥주 한 캔씩 제공되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하며, 탄산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받는다.
아직도 금주하고 있어?
나는 그렇다 대답했고, 이후 다른 주제로 전환하여 대화하였다.
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아직도 금주하냐는 말의 뜻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Are you still sober?
영어에는 금주를 뜻하는 단어 자체가 정립되어 있지만, 우리말에는 음주를 금하는, 즉 음주가 기본 설정이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아직도'라는 한계표현이 들어간 게 아닐까. 하는 언어적 관점의 생각이 하나.
그리고 더욱 중요한 두 번째 생각.
나의 금주가 중단되지 않았냐 하는 궁극적인 물음이다. 수험생에게 아직도 공부하냐 묻지 않을 것이고, 어찌 보면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다. 공부가 잘 돼 가냐 묻는 게 격식 있는 표현이겠지. 그 말인 즉 나의 금주가 쉽게 이루어질 거라고 보지 않았고, 내 평소 행실로 말미암아 볼 때 내가 금주를 오래 이어갈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당연하겠지. 내가 그동안 마신 양을 생각하면 주변의 신뢰를 잃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똥개가 똥을 끊겠냐.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편견을 심어준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나의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나도 부끄러움은 알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그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겠지. 염치가 없지는 않으니.
나의 평판과 신뢰 수준은 바닥에 있구나.
저 수영장 물 밑 깊은 곳 어딘가에 있을 내 자존심과 평판을 찾아 건져 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낚싯대가 아니다.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며 언젠가는 올라오겠지 기다릴 수 없다. 그러기에는 남은 세월과 시간이 아까울 따름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숨을 참고 잠수하여 내 손으로 거둬들여야만 한다.
오늘의 음주충동은 숨을 참듯이 참아본다. 내일의 나는 조금이나마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