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안 하세요?

DAY+6

by 송대근

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다들 건강하십시오.

건배~!!


건강하자면서 술잔을 들다니. 친숙한, 그러나 비논리적인 광경.

연휴를 핑계로 한 잔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회식자리까지는 참석하겠지만, 나는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다. 나는 직책도 상급자이고 누가 술을 억지로 먹일 환경도 아니니까.


회식을 하다 보면 느낀다.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떠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몰라하는지.

평소라면 피곤해서 잘 시간이지만 술은 시간개념을 잊게 만든다. 그렇다. 술을 끊게 되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하루가 정말 길다는 것이다.

사실 하루가 길 턱이 없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며 인간에게 제한된 수명을 생각한다면, 이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하루하루 원하는 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루란 아무리 아껴 써도 모자란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시간을 방만하게 소모해 왔는지 증명한다. 시간이 길게 느껴진 다는 것은 동시에 소중한 경험이다. 둔화되어 있던 몸의 감각들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자극에 정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만성적으로 둔감해진 감각들이 살아나면 사고회로도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더 많은 일, 다양한 창작, 복잡한 상상 또한 가능해진다. 몰입하기 더 쉬워지며 무슨 일을 해도 이전보다 성과가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것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원하게 채워진 맥주를 보니 음주충동이 들었다. 한 잔만 할까 라는 생각조차 아니었다.


새해니까 하루만 마실까? 아니, 말나 온 김에 명절 때만 마시기로 할까?

6일 만에 고개를 드는구나. 안녕, 충동아?


금주는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협상도 나 자신과 해야 한다. 상대이자 내가 하나의 주제로 협상해야 하는 상황이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너무 나고 좋은 상황이다. 이런 유착관계는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다. 삼권분립과도 같이 음주에 대한 선택권도 분립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나에게 들려오는 협상을 거절해야 한다.

협상을 질질 끌수록,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음주로 타결될 확률이 높아지며, 결국 도덕적 부패로 나를 내몬다.


아니, 안 마신다. 일 년 중이 아니라 단 한 방울도 언제라도 안 마신다.


단호하게 충동을 거절한다.

나는 이중인격자는 아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으리만치 음주충동이 툭툭 튀어나온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다 술을 마실만한 조건만 되면, '오늘만 마실까?' 하고, 심지어 구체적인 방안까지 떠오른다.


미리 글 써두고 마시면 되잖아.

그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럼 글을 쓰지 마. 아무도 안 보는 글이잖아.

이건 내가 볼 글이야. 내가 어떻게 금주에 실패하는지 스스로 찾기 위한 거라고.

그럼 실패하면 되겠네.

아니지, 이번에 하나 찾은 거지. 난 안 마셔.


충동을 이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논리는 항상 충동의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 충동이란 놈은 호시탐탐 쿠데타를 일으켜 내 주권을 차지하려 노린다. 그것도 매우 비열한 방법으로. 허술한 틈을 타서 비집고 들어온다.

나의 논리는 철저하고 정연하지만, 불규칙적인 상황에는 또 약한 부분이 있어서 충동의 게릴라전에는 몇 번이고 속수무책으로 주권을 빼앗긴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적인 반복훈련으로 충동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일기는 그 한 종류가 되겠다.


누군가 그랬다. 미군이 강한 이유는 협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도 그래야 한다.


오늘은 음주충동협상하지 않았다.

이전 06화인터넷이 안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