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지키기.
금주를 하면서, 그동안 술자리를 피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나만 술을 마시지 않을 뿐 상대방들은 술을 마시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술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만취할 경우, 나에게도 똑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인사불성 된 상대의 술주정을 받아줘야 하고, 집에 돌려보내는 것도 문제고, 심지어 폭력이나 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
심지어 내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갔다.
인사불성 된 상대와 함께 밤늦게 있다는 사실에서, 가족들은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며 잠도 잘 자지 못하며 내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일말의 과정을 통해 내 소중한 것들이 파괴되는 것이 느껴져서, 이제는 술자리를 거부할 생각이다.
나는 폭음과 알코올에 너그러운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주변에 알코올중독자들이 많으며 너그러운 자세로 그들을 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 가까이 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껴졌다. 그들이 맨 정신일 때는 만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소 분위기를 위해 한두 잔 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백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목적으로 만난다면, 그 술친구가 되어 줄 수는 없겠다.
내가 남에게 피해 입히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면, 내가 피해 입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 또한 실리적으로 영리한 선택이다. 피해자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내가 피해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들을 알코올의 영향에서 구해줄 수는 없다. 나만큼 경계성을 가지지도 않았고, 방탕한 삶도 하나의 방식이며 그들의 선택이니 존중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주는 피해가 예상되는 한, 그들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
거듭 반복하지만 나는 피해자가 나쁘거나 바보라서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운이 없어서 당할 뿐이다.
그러나 피해 후에도 스스로를 같은 환경에 노출시키고, 아무런 조치 없이 똑같은 생활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나 또한 피해를 즐기는 것이다.
동정심, 아쉬움, 미련 등이 이런 상황을 만들기 쉬운데, 위의 감정이 일말의 나에게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술이 헤어진 옛 연인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 옛 연인의 지인이 나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기분이다. 술을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술이 나에게 주는 육체적, 사회적, 관계적 모든 피해를 차단하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금주는 재생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