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답장
하나의 제대로 된 건축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보는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은 좋거나 싫거나 당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응축되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 그래서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다. 이 편지를 읽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건축에 대한 답장을 해 주었으면 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맺음말 中
나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건축 서적은 내 책장 한 뼘을 소리 없이 채우고 있었다. 처음 건축 서적을 읽기 시작한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건축을 전공하셨다. 다른 아버지와 아들이 그러하듯 나는 아버지를 동경하면서도 미워하고 동시에 사랑한다. 가장으로서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에 잔뜩 위축되었다가도, 한편으로는 친구 같은 모습에 금세 마음이 풀어지곤 하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나로서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들로서 부여받은 하나의 숙명처럼 느껴지곤 했다.
서점 한 켠을 가득 메운 신간 서적들 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처음 들어 올리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나는 건축 일반에 대한 교양뿐 아니라 아버지의 건축법을 읽고자 하였다. 앞서 인용한 이 책의 맺음말처럼, 이 글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독후감이면서 동시에 아버지께 부치는 한 통의 편지이다.
20세기 초반에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주택을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기계"라고 정의 내렸다. 건축에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기능은 건축이라는 자전거의 두 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전거가 굴러가려면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듯 건축은 기능 이외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퀴가 필요하다.
p.66 '제 2장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가'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빨간 기와로 지붕을 올린 집 한 채가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으셨다. 다락방과 장독대, 작은 마당이 딸려있는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살았다. 집은 항상 가족들의 에너지로 활기가 넘쳤다. 집안의 어르신인 할머니를 중심으로 큰아빠와 고모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건축 붐에 힘입어 가계를 도맡으셨다. 논리와 이성을 바탕으로 무장한 아버지는 굳건한 성(城) 같았다.
이사를 하게 된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아버지께서 새로 시작하려던 사업이 각종 규제에 부딪혀 무위로 돌아가게 되자 가족들 간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집을 나오셨다. 기존의 집은 할머니와 고모 두 분만이 남고 우리 가족은 용산구 청파동 작은 연립주택 2층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거친 시멘트 벽을 도배하고 형광등을 달았다. 어머니는 벽면 곳곳에 핀 곰팡이를 지우기 위해 매일 걸레질을 하셨다.
어린 나는 금세 새 집에 적응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러지 못하셨다. 남들에게 집을 보이길 꺼려했고 누군가가 찾아 올 일이라도 생기면 집 멀찍한 곳까지 걸어가서 사람을 만나 뵙고 오셨다. 아버지에게 '집'이란 오직 원효로 기와집 하나뿐이었다. 새 집은 오직 기능적인 바퀴로만 굴러가 한동안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주 비틀거렸다.
라스베이거스 간판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건축은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건축 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듯 주관적인 관점에서 공간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관점은 건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큰 변화를 준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객체의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p.251 '제 11장 왜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을 좋아하는가'
가계가 호전되는 대로 새로 이사를 가자던 아버지의 말씀과는 달리 청파동 집에 이사를 온지 어느덧 15년가량이 지났다. 집에 대한 열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무뎌졌고 가족들은 서서히 청파동 집을 '우리 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크고 넓은 집은 아니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이었고, 우리 가족은 4인용 식탁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갔다. 잠들기에도 비좁고 내 방 하나 없는 집을 '좋은 집'으로 기억할 수 있는 까닭은 그 공간을 함께 지낸 가족과의 추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몇 해 전, 원효로 집을 허물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온 가족이 수십 년간 살아온 집이 무너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집은 더 이상 원효로 집이 아니었고, 그것은 그저 주인을 잃고 추억 속에서만 숨을 쉬는 유령 같은 집이 되어 있었다. 나는 덤덤히 사실을 받아들이던 아버지의 심중을 헤아리며 내심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보다도 청파동 골목길의 가로등불이 아름답다고 나는 증언할 것이다.
무언가가 다른 어떤 것을 모방한다면 모방을 하는 자는 이미 오리지널보다 못한 모조품이 된다. 그래서 짝퉁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자연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건축물에 적용한다면 그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새와 새인형과 비행기가 있다고 하자. 하늘을 나는 새와 모양은 다르지만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새인형보다는 더 새와 비슷하고 새로부터 배운 것이 있는 것이다.
p.316 '제 13장 제품 디자인 vs 건축 디자인'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집을 짓는다. 설령 그것이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고 허무하게 무너질지라도 아버지는 다시 집을 지을 것이다. 내게 아버지는 그런 아빠였다.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는 예전에 비해 실수도 늘고 투정도 잦아지셨지만, 그것이 아버지로서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나는 믿는다. 여전히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철없는 아들이지만 친구이며 가장이고 동시에 선생인 아버지를 이해하고 닮아가기를 꺼리지 않았다.
나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건축 서적을 즐겨 읽는다.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집을 짓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야 함을 알기에 아버지의 건축법을 배워야만 했다. 아버지는 내게 넘어서야 할 벽이자 올라서야 할 지붕이셨다. 아버지께서 손수 기왓장을 올린 널따란 기와집을 추억한다. 나는 건축에서 아버지를 읽는다. 집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