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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Nov 30. 2017

오선지 다이너마이트

머리 위로 기차가 달린다
이명처럼 반복되는 주행  


간이역마다 내리는 사람들의 면면은
유행 지난 인상착의, 미제 사건의 몽타주
생각 어린 노인들만이 남아 빈 좌석을 차지한다


단 한 번 볼 수 없었던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지나온 길에 모두 용광로 속으로 내던져졌나
백골같은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달린다


질끈 동여 맨 각오의 매듭이
흐물거리는 혀처럼 풀어질 때
그래,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쓰여진 유서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한 줌의 규조토와
니트로글리세린
답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연애편지처럼
한껏 단단한 폭발을 바랐을 뿐인데


오선지 위에는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
폭발하는 파열음은 음정과 박자 무시
기차는 고꾸라지고 바퀴는 헛발질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머리 위에 오선지를 새로 그린다


새 펜을 들어 새 자를 꺼내
제아무리 반듯이 선을 그어도 예전과 같은 철로
구불거릴 줄 몰라서 가까이 내리지 못하는 슬픈 노선도


머리 위로 흙먼지를 뒤집어 쓴 기차가 달린다
이명처럼 반복되는 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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