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다리 달린 짐승으로 태어났다는 건

by StoA


가던 길을 멈추고
네가 자란 자리를 올려다본다


뭍에 사는 동물은 너를 보기 위해
고개를 젖혀 우러러봐야만 한다
목이 짧아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나는 그림자를 가진 짐승
너처럼 뿌리내리지도
열매 맺지도 못하고
소리 내어 우는 슬픈 짐승


나비며 벌이며
네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들
나를 겉도는 달콤한 풍경에
설익은 입맛만 다신다


그래, 저건 분명 실 거야
한 입 베어 문 순간

떫은 속내가 입 안 가득 퍼지고

뱉어내기 위해 애를 쓰게 되겠지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부은 발로 가던 길을 간다


네가 있는 자리를

띄엄띄엄 뒤돌아보며

서글픈 발자국만

드문드문 남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