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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Apr 09. 2016

침묵을 깨트리는 방법

다르덴 형제의 <로나의 침묵>과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


 4월 13일 제 20대 국회의원선거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히고설키듯 난무하는 정치적 메시지 속에서 우려하는 점은 역시나 저조한 투표율이다.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들숨만 있고 날숨이 없어 숨이 막히는 이러한 모습은 이미 김영하의 <퀴즈쇼>를 소개할 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위에서 우리는 쳇바퀴를 돌리는 실험쥐마냥 너무도 무력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답은 또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쉴 새 없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받는다. 지친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유예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이 그러하고, 잘못을 떠넘기기 바쁜 공직자들과 자기계발서를 답습하기에 급급한 취업 준비생들이 그러하다. 결국 제 목소리 한 번 내어놓지 못하고 대신 대답해 줄 누군가를 찾거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하기에 연연한다. 들숨만 있고 날숨이 없어 갑갑하다.

- 이제는 답을 해야 할 때.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고


 그리고 여기,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물, 로나가 있다.

 영화 <로나의 침묵>에서 주인공 로나는 벨기에 시민권을 얻기 위해 클로디와 위장 결혼을 했다. 로나는 약물 중독으로 괴로워하는 클로디를 매몰차게 대하고, 클로디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온다. 세탁소에서 덤덤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 차릴 그녀만의 소박한 카페를 상상하고, 일이 끝날 때면 사랑하는 남자친구 쇼콜을 만나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는 앙상하고 피폐한 남편 클로디가 로나를 기다리고 있다. 클로디는 그래도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로나가 고마울 뿐이다.


 로나는 자신의 비정상적인 일상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로나는 시민권을 얻기 위한 러시아 남자와의 결혼을 제안받는다. 거액의 돈이 그녀에게 주어질 거라는 달콤한 속삭임과 함께.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남편인 클로디와의 관계가 정리되어야 한다. 로나는 서둘러 클로디와의 이혼을 준비한다. 이번 일만 끝나면 사랑하는 남자와 작은 카페를 차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럴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클로디는 죽고 만다. 영화는 클로디의 죽음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저 '클로디가 죽었다'라고 이야기한다.


"클로디 씨의 부인이시잖아요."

 ‘부인이니까 직접 병문안하라는’ 간호사의 말을 부인하지 못하던 로라였다. 진통제를 사다 달라는 클로디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던 로라였다. 그러나 클로디의 죽음 이후 비로소 로나는 클로디의 부인(婦人)이었던 자신의 존재를 부인(否認)한다. 부인답지 않은 부인으로 살아간 자신의 존재를 뒤늦게야 의심하고 인정하고 만다. ‘부인이니까 클로디의 돈을 가져가라는’ 가족의 말에도 불구하고 로나는 죽은 클로디의 돈을 가져가지 못하고 은폐한다. 본인의 자격을 부인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로나는 클로디를 사랑한 부인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침묵하던 목소리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정치적이어야 한다.

 클로디의 아내로서 못 다한 로나의 사명은 곧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자신이 클로디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그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로나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다소 생뚱맞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원초적인 사랑의 모습이야말로 침묵하는 우리를 깨트리는 이미지가 아닐까. 연민과 사랑이 뒤엉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 자리에 비로소 침묵하지 않는 로나가 있다.


 제 20대 국회의원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때, 수많은 목소리가 여기저기 뒤죽박죽 나뒹굴고 있다. 비단 지금 이 순간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로 너무나 어지럽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삶과 내 주변의 것들에 침묵하지 않는 정치적 삶의 자세가 분명 필요하다. 삶의 비판과 의심에서 비롯한 진심의 목소리가 선전과 선동으로 얼룩진 이 땅 너머에,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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