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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Mar 08. 2017

아버지의 이름으로

영화 <로건>

 해당 글은 영화 <로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두 명의 나이 든 어른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두뇌를 가진 자, 찰스 자비에 교수는 퇴행성 질환에 걸려 물탱크에 갇혀 산다. 가로막는 적을 무참히 썰어버리던 울버린(이하 로건)은 콜택시 기사로 일한다. 상처를 순식간에 재생해내던 힐링 팩터 능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다리를 절고, 기침을 입에 달고 산다. 관객들은 변해버린 둘의 모습을 보며 웃다가도 곧 서글퍼진다. 늙고 병든 영웅들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두 어른 앞에 한 여자아이가 등장한다. 더 이상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돌연변이 아이이다. 아이를 쫓는 적들이 찾아오고 어른들의 은거지는 초토화가 된다.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동시에 방해받지 않기 위한 두 어른의 노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들의 앞길에는 조용하고 편안한 여생이 아니라 세대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두 어른은 분투하기 시작한다.


 한 시대의 영웅이었지만, 그것이 지금에 와서도 유효하리란 법은 없다. 젊은 날의 성취와 영광은 어느새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고 그 활약상은 허풍 가득한 만화책 속 일화로 기록될 뿐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세상의 쓴맛에 대한 경험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고 세상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는 악몽을 꾼다는 아이의 말에 로건은 대답한다.


나도 악몽을 꿔. 내가 사람들을 해치는.


 그런 의미에서 로건은 투박한 아버지 세대이다. 표현은 서툰 데다가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곁에는 그의 정신적 아버지이자 스승인 찰스가 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듯한 로건의 태도에 자주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상처 입은 로건을 다독인다. 행동파 로건과 이론파 찰스. 스승과 제자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인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서로를 품고 아우르는지를 보여준다.


찰스와 로건.


 그 연대 속에서 로건은 다음 과제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그 자신이, 찰스가 로건에게 그러했듯이,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아이 로라를 지키기 위해, 그 로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를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물려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영화 <로건>은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들과 공명한다. 서툰 아버지의 성장기. 하지만 성장기라고 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한, 소위 저무는 세대가 그다음 세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처연하다. 이내 풀밭에 쓰러져 헐떡이는 숨을 내쉬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야 "그래, 이런 기분이구나..."라고 말하는 로건의 모습이 그러하다.


 사람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단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거란다.
다시 이 계곡에 총성은 울리지 않을 거야.
- 영화 '셰인' 中 -



 물론 희생은 결코 강요될 수 없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으며, 기성세대 역시 젊은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둘 사이에는 역사라는 공통된 유산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지 않은가. 그곳으로부터 대화와 이해가 싹트고 유대와 연대가 꽃피워진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 <로건>을 보면서 나는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라는 이름을 한 단체들의 행태를 떠올린다. 아집과 맹신으로 가득 차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존재들. 이미 대화와 이해의 장을 닫아버린 그들이기에 나는 그들에게서 어떤 계몽이나 변화의 기대를 추호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이 그렇게 쓰인다는 것이. 그 이름에 담긴 유대와 연대의 의미를 영화 <로건>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로라는 추모한다. 다시는 이 계곡에 총성이 울려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한, 아버지 '로건'의 분투를.


로건과 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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