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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Dec 10. 2016

 어서 와요, 이 아름답고 슬픈 세상에.

 꿈꾸는 바보들의 이야기, <라라랜드>

 이 글은 영화 <라라랜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명 일순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 하나 내려와 나를 비춘다. 떨리던 목소리에 점차 음과 율이 따라붙고 나는 곧 자신감을 얻어 노래한다. 조명 하나 새로이 켜지고, 환한 불빛 아래 그대. 수줍게 내미는 손을 마주 잡고 우리는 춤을 춘다. 서로의 손짓과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천천히 발을 맞춰간다. 원 투, 원 투 쓰리.


 다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현실의 나는 마땅한 대본도 없어 더듬거린다. 준비한 안무는 엉키기 일수고 우리만을 비추는 조명 따위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판타지가 여기 있다. 영화 <라라랜드>가 그려낸 세상의 모습이 그러하다.


 미아와 세바스찬, 치기 어린 남녀는 각자 꿈이 있다. 미아는 배우를 꿈꾸지만 면접장에서 번번이 수모를 당한다. 세바스찬은 재즈를 연주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닮은 듯 서로 다른 남녀는 번번이 마주친다. 아주 우연히.

 시작은 늘 그렇듯 우연이었다. 짜증 섞인 자동차 경적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시작한 이 우연은 어느 술집으로, 어느 파티로, 이윽고 아름다운 야경으로까지 그들을 끌어당긴다. 우연에 의해 부딪히는 와중에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꿈을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어느새 조명은 그 둘만을 비추고 이내 두 사람은 천문대의 밤하늘을 배경 삼아 근사한 춤을 춘다. 보잘것없게만 여겨지던 나의 꿈은, 나의 노래는 그 사람 앞에서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진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둘 사이에도 위기가 따른다.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어 준 꿈이 서로를 갈라서게 만든다. 여느 사랑이야기가 그렇듯 위기를 극복하고 둘은 다시 만난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해 낸 둘의 노력을 조롱하듯 얼마 가지 못해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럴듯한 갈등이나 위기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한다는, 헤어짐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랑 이별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이 이야기가 <라라랜드>에 와서 유독 매력적인 까닭은 문자 그대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고, 조명이 켜지고, 별이 반짝이고, 노래하고 춤추는 이 문자 그대로의 표현들이 영화 <라라랜드>에서는 감각적으로 황홀하게 펼쳐진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림과 동시에 고전에 대한 헌사와 최신의 촬영 기술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지켜보는 관객은 꿈과 환상의 세계 라라랜드로 기꺼이 초대받는다. 사랑과 꿈에 대한 온갖 낭만적 은유가 <라라랜드>에서는 감각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시각과 청각에 직사하는 판타지는 때로 그 어느 문학보다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다. <라라랜드>는 그런 지점에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지극히 영화스러운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낭만이 품고 있는 스펙터클을 예찬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꿈과 사랑을 노래하던 아름다운 연인은 헤어지고 만다. 시청각적 황홀경이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치다가도 극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어떤 씁쓸하고 무거운 위치에 자리하게 된다. 비현실적으로 가공된 <라라랜드>라는 세계가, 보는 우리를 이토록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뒤흔들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말은 더듬거리고 발은 미끄러지고, 엉키고 꼬이는 일상의 비루한 순간들 와중에도 우리는 종종 초월적인 체험을 한다. 우연히 만난 어느 누군가가 나를 연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일. 그 우연한 누군가를 내 삶의 일부로 감히 초대하고, 둘만의 새로운 극을 함께 써내려 가는 일. 누군가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고 그런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무모한 신념. 우리는 종종 그러한 낭만적 세계를 경험하곤 한다. <라라랜드>가 흔해 빠진 판타지로 기억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러한 접점이 분명 우리에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라랜드>는 그렇게 끝이 난다. 지나간 인연에게 보내는 씁쓸한 미소, 그리고 시작되는 아직은 알 수 없는 다음 연주. 무엇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재즈 음악처럼 우리는 다시 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이 가혹한 현실에 내던져진다. 하지만 연극은 끝이 나고 무대는 막을 내릴지언정 우리는 추억한다. 아름다운 나의 사랑, 나의 꿈, 이 나의 노래.




조명 일순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 하나 내려와 나를 비춘다.

떨리던 목소리에 점차 음과 율이 따라붙고 나는 곧 자신감을 얻어 노래한다.

조명 하나 새로이 켜지고, 환한 불빛 아래 그대.

수줍게 내미는 손을 마주 잡고 우리는 춤을 춘다.

서로의 손짓과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천천히 발을 맞춰간다.

원 투, 원 투 쓰리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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