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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Jan 24. 2018

꿈 깨, 여긴 라라랜드가 아니야

영화 <원더 휠>

해당 글은 영화 <원더 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영화 <원더 휠>은 여러모로 영화 <라라랜드>를 연상시킨다. 극적인 조명과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을 연출해낸다는 점에서 그렇고, <라라랜드>가 꿈과 낭만의 세계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원더 휠> 또한 1950년대 대표적 유원지인 코니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관객들에게 무대 인사를 올리듯, 해변의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믹키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코니 아일랜드를 소개하는 극 초반, 우리는 이 '극적'인 영화의 방향성을 예측해 볼 수 있다. 꿈과 욕망이 교차하는 코니 아일랜드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들. 때로는 과장되었고, 때로는 노골적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 이야기.


웰컴, 코니 아일랜드.


꿈과 낭만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원더 휠>은 <라라랜드>와 닮았으나, 이를 다루는 태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라라랜드> 속 영화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순간-예를 들어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황홀한 춤을 추는 장면-은, 분명 비현실적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음직한 사랑의 순간을 낭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늘을 풍선처럼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라고 고백하는 클리셰의 낭만적 시각화랄까.


하지만 <원더 휠>은 다르다. 주인공 지니에게 코니 아일랜드는 결코 아름다운 유토피아가 아니다. 시끄러워 못살겠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첫 등장에서부터 알 수 있다. 닥치는 상황 또한 그녀의 편이 아니다.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린다는 남편과 사고뭉치 아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전부인의 딸까지. 


<원더 휠>에서 낭만은 결코 현재의 것이 아니다. 지니가 '과거'에 연극을 했던 기억, 믹키와의 '텍스트' 속에서만 존재하는 작가들 이야기, 아들 리치가 자주 찾는 '영화관'에 상영되는 작품들. 지니는 지금, 자신의 것이 아닌 낭만에 위태롭게 기대어 당장의 불행한 현실을 외면해버린다. 나는 그저 이 불편한 소음 속에서 웨이트리스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고. 유일한 탈출구는 내연 관계에 있는 믹키이지만, 그 또한 지니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고 불안과 두통을 남긴다.



이러한 낭만의 해체는 지니의 사고뭉치 아들, 리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리치가 주변의 것들을 불태우는 행위는 영화 중간중간 수 차례 등장하며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영화 속 가장 이해할 수 없는-비현실적인- 리치의 행동은, 곧 심리 상담 대상으로 지목된다. 현실과 공존할 수 없는 낭만과 이상은 결국 현실로 끌어내려질 교정 대상 취급을 받아야만 한다는 듯이.


영화 <라라랜드>는 아무리 비현실적인 장면이더라도 '그래, 나도 저런 꿈을 꾼 적 있었지'라며 관객들이 공감케 함으로써 '현실인 척하는 영화'의 지위를 획득했다. 하지만 <원더 휠>은 비루한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며 관객들에게 이건 영화임을 각인시키지만-인물들의 과장된 대사, 극적인 조명,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거는 인물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다. '영화인 척하는 현실'의 이야기.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결코 영화 같은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현실의 한계를 지적하고 마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은 더없이 슬프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의상으로 뜨거운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자신이 꿈꾸는 극적인 최후를 털어놓는 지니의 모습. 하지만 그마저도 실현되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운다. 영화 <햄릿>의 오필리어를 연기하고, 영화 <타이타닉>의 히로인을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지니 역)은 영화 <원더 휠>의 마지막, 그 어느 때보다 서글프고 외로운 표정을 연기한다.


'내일 낚시나 갈까?'라며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남편의 말에 '낚시 좋아하지 않는다'며 따라나서지 않는 지니의 마지막 대사. 이는 현실의 제약과 구속에도 불구하고 실낱같은 낭만의 여지를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지막 미련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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